비즈니스제148호 ·

매출 85% 뛴 회사가 '구독은 죽었다'고 했다

소프트웨어가 일을 대신 끝내주는 시대, 가격표가 바뀌고 있어요

매출 85% 뛴 회사가 '구독은 죽었다'고 했다

들어가며

구독자님, 얼마 전, Forbes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어요. 팔란티어의 시장 전략가 대니 럭투스(Danny Lutkus)가 공급망 소프트웨어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거든요.

“SaaS는 죽었다.”

보통이라면 마케팅 수사 정도로 넘길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을 한 회사의 직전 분기 실적을 보면 무게가 달라져요. 팔란티어는 2026년 1분기에 매출 16억 3천만 달러(약 2.2조 원)를 찍었어요. 전년 동기 대비 85% 성장이에요.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은 133%나 뛰었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SaaS가 죽었다”는 표현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밑에 깔린 구조적 전환이에요. 소프트웨어가 ‘쓰는 도구’에서 ‘일을 끝내주는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고, 이 이동은 제품 설계, 가격 모델, 채용까지 전부 바꿔요.

“AI 시대, ‘타임 차지’의 종말 … 변호사는 이제 무엇을 팔까?”앞으로 변호사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판단과 책임을 제공하는가’가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어요.lawtimes.co.kr

실제로 최근 저는 법률신문에서 주최한 행사 기조연설을 맡으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예전에 계정당(Seat), 라이선스 당으로 판매하던 소프트웨어 산업이 이제 해결 건 수와 실제 효용감으로 과금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걸 팔란티어에서 이야기를 한 거라고 보시면 되어요.

🔥 팔란티어가 뭐라고 했나

팔란티어의 주장을 정확하게 짚어볼게요.

기존 SaaS 모델은 소프트웨어 안에서 사람이 일하는 구조예요. 사용자가 대시보드에 접속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들어요. 기업은 이 ‘접속 권한’에 대해 사용자 수(좌석 수)만큼 구독료를 내요. 사람이 많을수록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죠.

팔란티어가 말하는 미래는 다른 모양이에요. 소프트웨어 레이어가 뒤로 물러나고, AI 에이전트가 전면에 나서요. 에이전트가 의사결정을 하고, 도구를 호출하고, 데이터를 옮기고, 프로세스를 완료 지점까지 밀어넣어요. 이 세계에서 구매자는 대시보드 접근권이 아니라 결과에 돈을 내요.

이건 추상적인 비전이 아니에요. 팔란티어가 실제로 가장 많은 상업 고객을 보유한 업종은 제조업이고, 거의 모든 제조 고객이 공급망에 팔란티어 솔루션을 쓰고 있어요. 공급망, 컴플라이언스, 방위산업 같은 영역은 에이전트 시스템이 가장 먼저 뚜렷한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에요. 조달 사이클을 줄이거나, 예외 상황을 자동 분류하거나, 사람 간 핸드오프를 없애는 것 등 고객 입장에서는 인터페이스가 예쁜지보다 일이 끝났는지가 중요하니까요.

이 주장이 1년 전이었다면 이론에 가까웠을 거예요. 지금은 다르죠. 시장이 이미 전통 SaaS의 경제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거든요.

📉 2026년 2월, 시장이 보낸 경고

팔란티어의 발언이 무게를 갖는 이유가 있어요. 불과 3개월 전, 시장에서 실제로 큰 일이 벌어졌거든요.

2026년 2월 첫째 주, SaaS 주식에서 시가총액 8천억 달러(약 1,100조 원) 이상이 증발했어요. S&P 500 소프트웨어 지수가 5거래일 만에 13% 폭락했고, 세일즈포스는 2주 만에 주가가 29% 빠졌어요. 일각에서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SaaS 종말)“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직접적 촉매는 AI 에이전트 도구들의 연이은 발표였어요. 자율적으로 법률 계약을 검토하고, 재무 분석을 수행하고, 워크플로를 관리하는 에이전트가 시연된 거예요. 시장의 공포는 단순했어요. AI가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 자체를 줄인다면? AI 에이전트 10개가 영업사원 100명의 일을 할 수 있다면, CRM 좌석 100개가 필요 없어지니까요.

물론 반론도 있어요. SaaStr의 제이슨 레킨은 “이건 AI가 SaaS를 죽인 게 아니라, 2021년부터 시작된 성장 둔화를 시장이 드디어 반영한 것”이라고 했어요. BofA의 비벡 아리아 애널리스트팀은 이 매도세를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두 시나리오를 동시에 가격에 반영한 비합리적 매도”라고 지적했고요. Deloitte도 “SaaS가 죽는 게 아니라 하이브리드로 진화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냈어요.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어요. 반론이 “SaaS는 괜찮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당장 죽지는 않는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심지어 회의론자들도 가치 중심이 좌석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요. Bain은 이렇게 정리했어요. “2016년 SaaS 폭락 때는 ‘언제 살 것인가’의 문제였다면, 2026년은 ‘당신 소프트웨어에 돈을 쓸 것인가, 아니면 AI에 쓸 것인가’의 문제다.”

실제로 Bain은 최근 SaaS 기업 및 소프트웨어 솔루션의 미래를 볼 때 그것을 내부에서 바이브 코딩 등을 통해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유망함을 판별해 경쟁사로 볼 지 안볼지를 고객사에게 전달한다고 파이낸셜타임즈에서 보도했어요.

💰 가격표가 바뀌고 있다? 이미, 지금

이 전환이 추상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숫자가 있어요.

Gartner는 2030년까지 기업 SaaS 지출의 최소 40%가 사용량·에이전트·성과 기반 가격 모델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해요. 좌석 기반 가격의 벤더 비중은 지난 12개월 사이에 21%에서 15%로 줄었어요. Bloomberg은 구독 기반 가격이 전체 소프트웨어 가격 모델의 60%에서 향후 10년간 30%로 하락할 수 있다고 봤고요.

이미 실행에 옮긴 회사들이 있어요.

  • Intercom의 AI 에이전트 Fin: 고객 문의를 자동으로 해결할 때마다 건당 $0.99를 받아요. 이 모델로 연간반복매출(ARR) 8자리(수천만 달러)를 달성했고, 연환산 성장률이 393%에요.
  • Zendesk: AI가 자동 해결한 티켓당 $1.50~$2.00.
  • Salesforce Agentforce: 대화 1건당 $2. 주목해야 할 건 숫자만이 아니에요. 가격의 비교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거예요. 일부 벤더들은 AI 에이전트 한 개에 월 800~2,000달러를 매기고 있어요. 비교 대상이 월 20달러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가 아니라, 연봉 6만 달러짜리 직원인 거예요. 소프트웨어 가격표가 IT 예산이 아니라 HR 예산과 경쟁하기 시작한 셈이에요.

🧭 스타트업이 지금 물어야 할 질문

팔란티어의 선전포고를 스타트업 창업자 입장에서 정리하면 이래요.

첫째, “우리 제품이 끝내주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에요. 사용자가 작업을 ‘관리’하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면, 그건 취약한 포지션이에요. 반대로 작업 자체를 ‘제거’하고 있다면, 전환기를 살아남을 공간이 있어요.

둘째, 가격 모델의 재설계예요. 좌석 기반 과금은 소프트웨어가 사람 없이 일을 하는 순간 어색해져요. “우리 에이전트가 조달 사이클을 3일 줄여주면 건당 얼마”라는 식의 성과 기반 가격이 고객에게도, 벤더에게도 더 자연스러운 구조가 돼요.

셋째, 채용의 변화예요. 기능 출시와 인터페이스 다듬기에 최적화된 팀 구성에서, 시스템 사고·워크플로 설계·평가 체계 구축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해요. 에이전트 제품은 기존 소프트웨어와 실패 양상이 달라요. 안정적인 도구 호출, 가드레일1​, 메모리, 피드백 루프가 필요해요. 이걸 데모 문제가 아니라 엔지니어링 문제로 다루는 팀이 더 빨리 움직여요.

넷째, 레거시 SaaS의 틈새가 기회라는 점이에요. 기존 SaaS 대기업들은 넓은 제품군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경직된 가격 구조와 좌석 기반 매출에 묶여 있어요. 수직 시장에서 하나의 고통스러운 프로세스를 끝까지 처리해주는 에이전트 스타트업이, 더 예쁜 대시보드를 가진 범용 SaaS보다 강력한 피치를 가질 수 있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팔란티어의 “SaaS는 죽었다”라는 문장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문장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강하게 공감해요.

기술 전략을 수립하면서 수없이 봐왔던 패턴이 있어요. 새로운 기술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무너뜨릴 때, 첫 번째 전조는 항상 가격 모델의 균열이에요. 클라우드가 온프레미스를 밀어냈을 때도, 라이선스 판매에서 구독 모델로 전환이 먼저 일어났어요. 지금 좌석 기반에서 성과 기반으로의 이동은, 그때와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에요.

제가 주목하는 건 “SaaS냐 에이전트냐”의 이분법이 아니에요. “고객이 돈을 내는 기준이 무엇인가”의 전환이에요. ‘접근권’에 돈을 내던 시대에서 ‘실행 결과’에 돈을 내는 시대로 이동할 때, 제품 설계부터 고객 성공의 정의까지 전부 바뀌어요.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요. 팔란티어가 이 발언을 할 수 있는 건, 매출 85%라는 숫자가 뒷받침하기 때문이에요. 사망 선고를 내릴 자격은 대안을 실증한 쪽에만 있어요. 실적 없이 “SaaS는 끝났다”고 말하는 건 허세지만, 분기 매출 2.2조 원짜리 회사가 말하는 건 전략적 포지셔닝이에요. 스타트업에게 이건 “SaaS를 포기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당신의 소프트웨어가 대신 끝내주는 일이 무엇인지 정의하라”는 경고예요.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 “SaaS는 죽었다”는 과장이지만, SaaS의 가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에요. 좌석 기반 가격은 12개월 만에 비중이 6%p 하락했고, 이 추세는 가속 중이에요.
  • 진짜 전환은 ‘소프트웨어 접근권 판매’에서 ‘실행 결과 판매’로의 이동이에요. 이건 가격 모델뿐 아니라 제품 설계, 채용, 고객 성공의 정의까지 바꿔요.
  • 스타트업에게 이 전환기는 위기가 아니라 포지셔닝 기회예요. 레거시 SaaS가 좌석 매출에 묶여 있는 동안, 수직 시장에서 성과 기반으로 파고들 수 있는 틈이 열려 있어요. 다음에 자사 제품의 로드맵을 검토하실 때, 이 질문 하나를 던져보세요. “우리 소프트웨어가 사라져도, 고객의 일은 끝나 있는가?”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각주

  1. 가드레일 (Guardrails): AI 에이전트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설정하는 안전장치예요. 자율주행차의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처럼, AI가 정해진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게 만드는 규칙이라고 생각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