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제149호 ·

9유로짜리 소포가 그린 세계지도

셔츠·장난감·선글라스, EU의 새 계산법

9유로짜리 소포가 그린 세계지도

들어가며

구독자님, 얼마 전 온라인에서 5유로짜리 티셔츠 한 장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고 해볼게요. 몇 주 뒤 도착한 상자에는 물건값과 별개로 3유로가 붙어 있어요. 그럼 티셔츠에 폰케이스, 선글라스까지 같이 담았다면요? 3유로가 아니라 9유로예요. 상자는 하나인데 청구서에는 세 번 찍혀요.

7월 1일부터 유럽연합이 시작한 새 관세 이야기예요. 대부분의 보도는 “테무·쉬인 잡는 관세”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요. 그런데 저는 이 3유로라는 숫자가 유난히 작다는 점이 오히려 걸렸어요. 상자 하나에 몇 유로 얹는다고, 연간 59억 개씩 쏟아지는 흐름이 정말 멈출까요? 숫자의 크기와 목표의 크기가 안 맞아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이건 세금을 걷으려는 조치가 아니에요. 물건이 ‘어디서 만들어져 어떤 경로로 국경을 넘는가’라는 지도 자체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에요. 3유로는 그 지도의 아주 작은 좌표 하나일 뿐이고요. 오늘은 그 지도를 같이 펼쳐볼게요.


📦 상자 하나에 세 번 찍히는 청구서

먼저 규칙부터 정확히 볼게요. 이번 관세의 핵심은 ‘소포당’이 아니라 ‘품목 유형당’이라는 점이에요. 이 한 줄에 정책의 의도가 거의 다 담겨 있어요.

지금까지 유럽연합은 150유로 이하 물건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았어요. 2008년에 만든 ‘데 미니미스1’ 면제라는 제도예요. 소액 소포 하나하나에 관세를 물리려면 걷는 돈보다 행정 비용이 더 드니까, 아예 면제하는 게 합리적이던 시절의 규칙이에요. 이름 그대로 “따지기엔 너무 작다”는 뜻이고요.

문제는 그 ‘시절’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예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자료를 보면, EU로 들어오는 소액 소포는 2022년 약 13억 개에서 2025년 약 59억 개로 4배 넘게 늘었어요. 하루로 치면 1,200만 개예요. 그중 90% 이상이 중국발이고요. 면제 제도를 설계하던 사람들은 이 정도 규모를 상상조차 못 했어요. 작은 예외로 뚫어둔 구멍이 어느새 정문보다 커진 셈이에요.

7월 1일부터는 150유로 이하 소포에도 품목 유형마다 3유로가 붙어요. 셔츠 한 장이면 3유로, 셔츠에 장난감에 선글라스면 세 품목이라 9유로예요. 같은 티셔츠 세 장은 한 품목이라 3유로고요. 이 글의 프리헤더에 적은 “셔츠·장난감·선글라스”가 바로 이 계산법이에요. 겉보기엔 소비자 지갑을 노린 것 같지만, 실제 과녁은 조금 다른 데 있어요.

이 규칙이 정확히 겨냥하는 건 테무·쉬인·알리익스프레스의 사업 모델이에요. 이들은 중국 창고에서 개별 주문을 하나씩 항공편으로 유럽 문 앞까지 직배송하는 방식으로 커졌어요. 그것도 관세를 한 푼도 안 내면서요. 유럽 안에서 정식으로 관세를 다 내고 경쟁하던 H&M이나 자라 같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어요. 같은 옷을 팔아도 한쪽은 관세를 내고 한쪽은 안 내니까요. 유럽연합이 “불공정 경쟁”이라고 부른 게 바로 이 지점이에요.

유럽연합이 내건 명분은 하나 더 있어요. 집행위원회는 이번 조치로 유럽 도심 상권의 ‘공동화’를 막고 싶다고 했어요. 값싼 직구가 밀려들면서 동네 상점이 하나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있던 일자리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무너진다는 문제의식이에요. 관세 이야기 뒤에는, 사실 ‘거리의 풍경’이 바뀌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깔려 있는 거죠. 3유로가 다루려는 게 단순히 세금이 아니라는 첫 번째 신호예요.


진짜 지렛대는 3유로가 아니에요

여기서부터가 제가 이 사안을 흥미롭게 본 지점이에요. 3유로는 사실 이 정책의 주인공이 아니에요. 진짜 힘은 다른 두 곳에 숨어 있어요.

첫째, 이 3유로 관세는 ‘한시 조치’예요. 2026년 7월 1일부터 2028년 7월 1일까지, 딱 2년만 적용돼요. 그다음엔 품목별 정규 관세로 바뀌어요. 세율은 0%에서 17%까지 물건 종류에 따라 달라지고요. 중요한 건, 많은 품목에서 이 정규 관세가 3유로보다 오히려 비싸다는 점이에요. 다시 말해 2028년은 관세가 느슨해지는 시점이 아니라 더 세게 조여지는 시점이에요. 지금의 3유로는 본게임이 아니라 예고편에 가까워요.

둘째, 진짜 부담은 관세 몇 유로가 아니라 ‘모든 소포에 통관 신고를 해야 한다’는 의무 그 자체예요. 개별 직배송 모델은 물건 하나하나가 통관 서류를 요구받는 순간 단위 경제가 흔들려요. 수천만 건의 소비자 주문마다 관세 이벤트가 하나씩 붙으니까요. 관세 금액보다, 그 금액을 처리하는 절차의 무게가 더 큰 셈이에요. 여기에 유럽연합은 2026년 가을에 소포당 2유로가량의 ‘처리 수수료’를 따로 물리는 방안도 협의 중이에요. 관세와는 별개로, 세관이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는 비용을 메우려는 거예요. 소액 소포에 붙는 비용이 이렇게 한 겹씩 쌓이고 있어요.

이 둘을 합치면 유럽연합이 실제로 설계한 그림이 보여요. 개별 직배송을 경제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고, 대신 ‘EU 안에 물류창고를 두고 벌크로 들여온 뒤 현지에서 배송하는’ 방식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거예요. 2년의 유예는 그 사이에 모델을 갈아타라는 신호고요. 벌을 주려는 게 아니라, 이사를 재촉하는 거예요.

그리고 테무와 쉬인은 이 신호를 정확히 읽었어요. 쉬인은 2025년 12월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대형 물류센터를 열었어요. 헝가리에는 팝업 매장을 냈고, 파리에 상설 매장을 열려다 반발로 접기도 했어요. 유럽 안에서 배송하면 품목당 관세를 피할 수 있고, 배송 속도도 빨라져요. 규제가 만든 인센티브 구조를 읽고 남들보다 먼저 움직인 거예요.

이 대목이 오늘 글에서 가장 중요해요. 국경 비용을 올렸더니, 이들은 유럽을 떠난 게 아니라 오히려 유럽 안으로 들어왔어요. 규제가 축출이 아니라 내재화를 부른 거예요.

배경을 하나 더 얹을게요. 사실 이 흐름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어요.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에 800달러 데 미니미스 면제를 없앴거든요. 중국발은 5월, 나머지 국가는 8월에요. 원래 유럽연합은 이 개혁을 2028년에 하려 했는데, 미국이 문을 닫자 자국 세관에 소포가 쏟아지는 걸 지켜본 회원국들이 일정을 2년 앞당겼어요. 관세가 시장의 속도가 아니라 정치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거예요. 이 감각이 뒤에 이어질 이야기의 열쇠예요.


🌏 ‘가장 싼 곳’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그런데 저는 이 사안을 무역 뉴스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친다고 봐요. 묻혀 있는 다른 절반은 ‘안전’이에요.

최근 RTÉ의 한 분석 기고가 이 흐름을 넓게 짚었어요. 기고자가 헬스케어·제조·기술·물류·소비재 전반의 공급망 리더 22명을 인터뷰했는데, 놀란 지점이 있었대요. 정치가 공급망에 개입하는 게 이들에게 이미 ‘기본값’이 됐다는 거예요. 예전엔 정치적 사건을 가끔 터지는 외부 리스크로 봤다면, 지금은 정치 개입이 국제 무역의 상수라고 전제하고 계획을 세운다는 거죠. 환율이나 운임을 챙기듯, 지정학 리스크를 상시로 모니터링하는 조직도 생겼고요.

이 기고가 쓴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 지난 30년간 기업의 질문은 “어디서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나”였는데, 지금은 “어디가 가장 안전한가”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코로나19가 마스크와 반도체 부족을 드러냈고, 브렉시트가 국경에 서류를 다시 세웠고, 미·중 갈등이 첨단기술과 의약품까지 흔들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와 식량을 끊었어요. 각각은 작은 정책처럼 보이지만, 쌓이면 무역의 규칙 자체가 달라져요.

그러니까 3유로는 이 거대한 재배선의 아주 작은 증상이에요. 소비자는 이걸 ‘5유로짜리에 붙은 3유로’로 겪지만, 기업은 이 변화를 매일 겪어요. 소비자에게는 가끔의 불편이, 기업에게는 상시의 전제 조건이 된 거예요.

‘안전’이라는 키워드는 이번 EU 조치에도 그대로 박혀 있어요. 이건 세수 문제이기 이전에 소비자 안전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유럽연합 27개국 세관이 2025년에 합동 단속을 벌였는데, 결과가 꽤 셌어요. 온라인으로 들어온 화장품의 65%, 개인보호장비(선글라스·헬멧·구명조끼 등)의 60%가 EU 기준에 미달했어요. 라벨 누락, 금지 성분 포함, 안전 서류 부재 같은 이유로요. 참고로 이 ‘개인보호장비’ 항목에 선글라스가 들어가요. 프리헤더의 선글라스가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셈이에요. 값싼 선글라스 하나가 자외선 차단은커녕 기준 미달일 확률이 절반을 넘는다는 뜻이니까요. 함께 검사한 건강보조식품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미달이 확인됐고요. 입에 넣거나 몸을 지키는 물건일수록 문제가 컸어요.

더 서늘한 숫자가 있어요.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지금 세관 검사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했어요. 한 소비자단체 추산으로는 전체 소포의 0.006%만 검사받아요. 59억 개 중 극히 일부만 열어본다는 뜻이에요. 데 미니미스가 만든 건 세금 공백만이 아니었어요. 최소한의 검사조차 거치지 않은 물건이 밀려드는 규제 사각지대이기도 했어요. 관세를 안 걷었다는 것보다, 아무도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게 더 큰 구멍이었던 거죠.

지난달 유럽연합이 테무에 2억 유로 과징금을 매긴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집행위원회는 디지털서비스법2 위반으로 이 과징금을 부과했어요. 흥미로운 건 명분이 ‘불법 상품을 팔았다’가 아니라 ‘불법 상품이 올라올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였다는 점이에요. 미스터리 쇼핑에서 충전기 상당수가 안전 기준에 미달했고, 유아용 장난감에서는 유해 화학물질이나 질식 위험이 나왔어요. 규제의 초점이 개별 상품 단속을 넘어, 플랫폼이 위험을 관리했느냐라는 책임 구조 자체로 옮겨간 거예요.

실제로 이번 관세도 책임 소재를 조용히 바꿨어요. 예전엔 소비자가 법적으로 ‘수입자’였어요. 쉬인 원피스에 불법 성분이 들었어도 책임은 주문한 사람 몫이었죠. 이제는 IOSS3에 등록된 플랫폼과 판매자가 ‘간주 수입자’가 돼요. 물건을 들여오는 법적 책임이 소비자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간 거예요. 3유로짜리 관세 안에, 사실은 이렇게 큰 책임의 이동이 숨어 있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번 조치를 ‘유럽이 테무·쉬인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식으로 읽지 않아요.

20년 가까이 여러 기업의 시장 진입 전략을 설계하면서 반복해서 확인한 패턴이 하나 있어요. 국경에 비용을 세우면, 정교한 플레이어는 시장을 떠나는 게 아니라 비용 구조를 현지화한다는 거예요. 힘과 자본이 있는 기업일수록 더 그래요. 이들에게 관세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 ‘어디에 창고를 지을지’를 다시 계산하게 만드는 신호일 뿐이에요. 쉬인의 폴란드 물류센터가 바로 그 계산의 결과고요.

그래서 저는 이번 정책의 진짜 효과가 ‘중국 플랫폼 축출’이 아니라 ‘중국 플랫폼의 유럽 내재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물건은 계속 들어와요. 다만 들어오는 경로가 바뀌고, 그 경로 위에서 누가 세금을 내고 누가 책임을 지느냐가 바뀌는 거예요. 지도가 지워지는 게 아니라, 다시 그려지는 거죠.

한 가지는 정직하게 짚고 싶어요. ‘공정 경쟁 회복’이라는 명분에는 빈틈이 있어요. 유럽 안에 창고를 지을 자본이 있는 쉬인·테무는 규제를 우회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는 작은 해외 판매자들은 오히려 밀려나요. 규제가 큰 플레이어에게는 이사 비용이지만, 작은 플레이어에게는 퇴장 명령이 될 수 있어요. 게다가 그 3유로, 9유로는 결국 소비자가 내요. 명분은 소상공인 보호인데, 청구서는 장바구니로 내려오는 구조예요. 이게 좋은 정책이냐 아니냐를 제가 단정할 문제는 아니에요. 다만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비용을 내는가’는 3유로라는 숫자 뒤에서 조용히 갈리고 있어요. 저는 그 갈림을 지켜보는 게 이 사안의 진짜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마치며

세 가지만 남길게요.

첫째, 3유로는 세금이 아니라 지도예요. 물건이 국경을 넘는 방식을 바꾸려는 설계이고, 2028년의 정규 관세 전환이 진짜 분기점이에요. 둘째, 국경 비용이 오르면 큰 플레이어는 떠나지 않고 현지화해요. 쉬인의 폴란드 창고가 그 증거고요. 셋째, 이 모든 게 ‘가장 싼 곳’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넘어가는 공급망 정치화의 한 장면이에요. 3유로는 그 큰 변화가 우리 장바구니에 남긴 작은 흔적이고요.

다음에 온라인 장바구니에 여러 물건을 담다가 예상보다 비싼 청구서를 보게 된다면, 그 몇 유로 뒤에 이 지도가 있다는 걸 한 번쯤 떠올려 보셔도 좋겠어요.

혹시 지금 몸담으신 조직의 공급망에서도, ‘가장 싼 곳’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곳’을 먼저 따지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나요? 어떤 사건이 그 계기가 됐는지 댓글로 들려주시면, 다음 호 소재로 이어가 볼게요.


💬 조직의 공급망에서 ‘싼 곳 → 안전한 곳’ 전환을 겪은 순간을 댓글로 들려주세요. 다음 호에 반영해볼게요. 📨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하는 동료가 있다면 이 글을 전해 주세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안광섭 프로필 일러스트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각주

  1. 데 미니미스(de minimis): 일정 금액 이하 소액 수입품에 관세를 면제해 주는 제도예요. 걷을 관세보다 행정 비용이 더 클 때 “너무 작아서 따지지 않는다”는 취지로 두는 예외인데, 온라인 직구가 폭증하면서 이 작은 예외가 거대한 구멍이 됐어요.

  2. 디지털서비스법(DSA, Digital Services Act): 유럽연합이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불법·유해 콘텐츠와 상품 관리 책임을 지운 법이에요. 문제가 터진 뒤 처벌하는 것을 넘어, 위험을 미리 평가하고 대비했는지까지 따진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3. IOSS(Import One-Stop Shop, 수입 부가세 원스톱 신고): 유럽연합에 물건을 파는 해외 판매자가 부가세를 한곳에서 신고·납부하도록 만든 제도예요. EU 전자상거래 수입의 93%가 이 경로를 지나가서, 이번 관세도 이 등록 사업자를 기준으로 적용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