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테크제161호 ·

20와트짜리 뇌를 꺼두는 사람들

기계가 뇌를 이긴 게 아니에요. 우리가 뇌를 반납하고 있는 거죠.

20와트짜리 뇌를 꺼두는 사람들

들어가며

구독자님, 디지털카메라가 막 나오던 시절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카메라는 인간의 눈이라고요. 사실이었어요. 지금도 사실이고요.

저는 요즘 여기에 문장을 하나 더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 어떤 인공지능 모델보다 가성비 좋은 지능은 여전히 인간의 뇌예요. 성능의 결은 다르지만, 효율만 놓고 보면 상대가 안 돼요. 뇌는 대략 20와트, 흐릿한 백열전구 하나 켜는 정도로 돌아가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겨요. 그렇게 싼 지능을 우리 모두 이미 갖고 있는데, 왜 수십억 와트짜리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기계는 뇌보다 똑똑해서 이긴 게 아니에요. 뇌가 절대 못 하는 것 하나, 복제를 해내서 이긴 거예요.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다음에 있어요.


눈은 카메라에게 진 적이 없어요

디지털카메라가 눈을 이겼다고들 하지만, 정확히 뭘 이겼는지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화질일까요? 아니에요. 인간의 눈은 원뿔세포 약 600만 개로 초당 16억 비트가량을 받아들여요. 웬만한 카메라 센서가 명함도 못 내밀죠. 가격 대비 성능으로도 눈이 계속 이기고 있어요.

카메라가 이긴 건 딱 하나였어요. 눈이 본 장면은 머릿속에서 꺼낼 수가 없어요. 복제도, 전송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나눠 갖기도 안 되죠. 반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렌즈에서 떨어져 나와요. 완벽하게 복사되고, 어느 기기에서나 똑같이 열려요. 눈이 진 건 화질 경쟁이 아니라 복제 가능성 경쟁이었던 거예요.

재미있는 건 그 마지막 벽마저 지금 조금씩 뚫리는 중이라는 거예요. 뇌를 스캔해서 그 사람이 보고 있는 이미지를 AI가 복원하는 연구가 매년 정교해지고 있거든요. 아직은 방 하나만 한 스캐너가 필요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장면보다 실제로 눈에 비친 장면을 훨씬 잘 읽어내는 수준이지만요. 그래도 원리는 이미 증명됐어요.


뇌도 똑같은 이유로 ‘져요’

이제 이 구조를 한 층 위로 올려볼게요. 뇌와 AI 사이에서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져요.

20w먼저 팩트 체크부터요. 뇌가 20와트라는 말, 맞아요. 다만 오해 하나는 짚고 갈게요. 이건 뇌가 만들어내는 전기가 아니라 포도당을 태워 쓰는 대사 에너지, 쉽게 말해 열이에요. 그리고 정확히는 14~20와트 사이의 어림값이지, 주문서에 적어 넣을 수 있는 사양이 아니에요.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소비량은 많아야 8%가량 늘 뿐이고요. 그래도 전구 하나 수준이라는 사실 자체는 안 변해요.

이렇게 싼 지능을 두고 우리가 수십억 와트를 쓰는 이유. AI가 파는 게 ‘뇌보다 똑똑함’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AI가 파는 건 똑같이 10억 번 복제되고, 언제든 대기하고, 로그로 감사까지 되는 균질한 정신이에요. 뇌는 이걸 못 해요. 뇌는 20년을 키워야 하나가 완성되고, 그 하나는 복제가 안 되니까요.

여기서 20와트가 몰래 숨기고 있던 비용이 드러나요. 바로 그 20년치 양육과 교육에 들어간 에너지예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기계는 한 번 훈련해두면 그 비용이 10억 카피로 나눠 상각되는데, 뇌는 한 명 한 명 처음부터 다시 키워야 하거든요. 그래서 ‘뇌 서버를 배양해서 쓰자’는 생체컴퓨팅의 꿈이 바로 이 지점에서 벽에 부딪혀요.

실제로 이 분야는 이미 상용 단계까지 왔어요. 호주 코티컬 랩스는 살아있는 뉴런 약 80만 개에 게임 ‘퐁’을 학습시킨 연구1로 유명해졌고, 2025년엔 3만 5천 달러짜리 상용 생체컴퓨터 CL1을 내놨어요. 스위스 파이널스파크는 인간 뇌 오가노이드2 16개를 월 500달러에 원격으로 빌려주고요. 다 진짜예요. 논문으로 검증됐거나 실제로 팔리고 있어요.

그런데 규모가 하이프에 비하면 초라할 만큼 작아요. 오가노이드 하나는 겨우 6개월 남짓 살아있고, 균질하게 대량으로 찍어낼 수가 없어요. ‘실리콘보다 100만 배 효율적’이라는 문구가 돌아다니지만, 그건 회사 측이 말하는 ‘원리상’ 가능성이에요. 살려두는 데 드는 배양 장치와 영양 공급, 6개월마다 갈아야 하는 수명까지 넣으면 그 효율은 대부분 사라져요. 복제가 안 된다는 게, 여기서도 발목을 잡는 거죠.


그런데 진짜 반전은 여기 있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결론은 밝아요. 뇌는 싸고, 기계는 복제로만 이겼으니, 각자 잘하는 걸 맡기면 되겠죠. 논리와 계산은 실리콘, 거대한 최적화 탐색은 뉴로모픽3이나 양자 컴퓨터, 그리고 판단과 윤리와 직관은 사람. 저도 이 분업이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답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 분업에는 조용한 전제가 하나 깔려 있어요. 사람이 ‘판단’이라는 자기 몫을 계속 쥐고 있어야 성립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요즘 바로 그 전제가 흔들리는 걸 봐요.

진짜 위험은 기계가 뇌를 이기는 게 아니에요. 기계가 싸고 균질한 사고, 그러니까 언제든 복제되는 생각을 값싸게 내주니까, 사람이 복제 불가능한 유일한 자산을 스스로 반납하는 거예요. 자기 판단을요. 세상에서 제일 싼 20와트짜리 뇌를, 정작 주인이 안 켜기 시작하는 거죠.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떠올려볼게요. 보고서 초안을 AI에게 맡기는 것까지는 좋아요. 문장을 다듬고 자료를 정리하는 건 반복에 가까우니까요. 그런데 ‘AI가 내놓은 결론이 우리 상황에 정말 맞는가’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실어 보낸다면, 그때 넘긴 건 반복이 아니라 판단이에요. 코드도 똑같아요. AI가 짜준 코드를 이해하지 않은 채 붙여 넣는 순간, 나중에 그게 왜 그렇게 도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남죠.

무서운 건 이게 잘 티가 안 난다는 거예요. 판단을 넘긴 그날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오히려 빠르고 편하죠. 대가는 한참 뒤에, ‘왜 우리가 이렇게 결정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조직 전체가 미끄러질 때 청구돼요. 개인의 사고력도 근육이라, 안 쓰면 조용히 빠지거든요.

이번 호의 출발점이 된 한 에세이는 이 장면을 이렇게 그려요. 외부의 뇌가 도시의 전력과 수도를 돌리는 동안, 정작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출퇴근하는 미래요. 저자는 이걸 공상과학이라고 선을 그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건 이미 시작된 현재의 조금 과장된 버전일 뿐이에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이야기를 2025년 9월에 이미 한 번 했어요.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라는 책을 썼거든요. 부제가 ‘AI 시대, 생각하기를 포기한 현대인을 위한 경고’였어요. 2024년에 탈고 되어 2025년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흥행으로 보면 참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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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거의 안 읽혔어요. AI 하이프가 정점이던 시기라, ‘생각을 기계에 맡기지 말라’는 경고는 김빠지는 이야기였거든요. 다들 위임의 상방만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잘 팔리는 이야기는 인공지능은 굉장하고 이런 것도 가능하고 어떻게 써야한다 이런 이야기였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책이 다시 읽히기 시작해요. 제 진단이 갑자기 옳아져서가 아니에요. 시장이 이제야 그 질문을 할 준비가 된 거예요.

GTM 전략을 세우면서 수없이 봐온 패턴이 하나 있어요. 좋은 진단일수록 시장이 준비될 때까지 시차를 먹는다는 거예요. 기술이 무언가를 바꿀 거라는 전망은 대체로 맞아요. 다만 시기와 경로를 거의 다 틀리죠. ‘생각의 외주화’도 똑같았어요. 방향은 맞았는데, 사람들이 그 대가를 체감하기까지 딱 2년이 걸린 거예요.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기술을 멀리하라는 게 아니에요. 정반대예요. 가장 싼 지능을 이미 손에 쥐고 있으면서 그걸 안 켜는 게, 제일 아까운 선택이라는 거예요.


마치며

정리할게요. 인간의 뇌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지능이에요. 기계가 그 뇌를 이긴 건 성능이 아니라 복제 가능성 하나였고요. 그러니 진짜 질문은 ‘기계가 얼마나 똑똑해지나’가 아니라, ‘나는 복제할 수 없는 내 판단을 계속 켜두고 있나’예요.

AI에게 무언가를 맡길 때, 한 가지만 구분해보시길 권해요. 지금 넘기는 게 ‘반복’인지 ‘판단’인지요. 반복은 얼마든지 넘겨도 돼요. 그게 기계가 잘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판단까지 습관처럼 넘기고 있다면, 그건 세상에서 제일 싼 컴퓨터를 꺼두는 셈이에요.

요즘 AI에게 일을 맡기다가 ‘어, 이건 내가 판단해야 하는 건데 그냥 넘겼네’ 싶었던 순간이 있으셨나요? 어떤 일에서 그 선을 넘었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반복과 판단의 경계가 실제로 어디쯤인지, 다음 호에서 독자분들 사례로 같이 그려볼게요.


💬 AI에게 ‘판단’까지 넘겼던 순간이 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다음 호에 반영해볼게요. 📨 요즘 생각을 너무 쉽게 외주 주는 것 같은 동료가 있다면, 이 글을 슬쩍 건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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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Zheng, Jieyu & Meister, Markus, “The unbearable slowness of being: Why do we live at 10 bits/s?”, Neuron, 2025. 링크 ··· 감각은 초당 10억 비트를 받는데 의식은 10비트만 처리한다는, 오늘 글의 뼈대가 된 논문이에요.
  • Kagan, Brett J. 외, “In vitro neurons learn and exhibit sentience when embodied in a simulated game-world”, Neuron, 2022. 링크 ··· 뉴런이 ‘퐁’을 학습한 그 연구예요. 단, ‘sentience’라는 표현은 학계에서 반박이 있었으니 감안하고 읽으세요.
  • “This $35,000 Computer Is Powered by Trapped Human Brain Cells”, Gizmodo, 2025. 링크 ··· 코티컬 랩스 CL1의 가격과 사양을 확인할 수 있어요.
  • “World’s first bioprocessor uses 16 human brain organoids”, Tom’s Hardware, 2024. 링크 ··· 파이널스파크 오가노이드 대여 서비스의 실물 정보예요.
  • “The Human Brain Runs on Less Power than a Light Bulb”, Britannica. 링크 ··· 20와트 수치의 근거와 그 한계를 같이 짚어줘요.

안광섭 프로필 일러스트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각주

  1. DishBrain: 살아있는 뉴런을 전극판 위에 키워 만든 시스템이에요. 여기에 신호를 주고받게 했더니 5분 만에 ‘퐁’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다만 이걸 ‘지능’이라 불러도 되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에요.

  2. 오가노이드(organoid): 줄기세포로 실험실에서 키운 아주 작은 장기 덩어리예요. 뇌 오가노이드는 실제 뇌의 일부 구조와 활동을 흉내 내지만, 사람의 뇌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3. 뉴로모픽 컴퓨팅(neuromorphic computing): 뇌의 구조를 흉내 낸 반도체 설계예요. 중앙 시계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도는 기존 칩과 달리, 필요할 때만 신호를 주고받아서 최적화 문제에 에너지를 훨씬 적게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