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테크제149호 ·

3,800시간, 뇌로 말한 기록

3월엔 뇌를 빌려줬고, 이번엔 뇌가 말을 되찾았어요

3,800시간, 뇌로 말한 기록

들어가며

뇌파로 로봇을 훈련시킨다고? 중국과 미국이 지금 미친 듯이 투자하는 이유AI의 다음 교재는 ‘책’이 아니라 ‘인간의 뇌’ 그 자체예요.oztalking.com

구독자님, 3월에 “뇌파로 로봇을 훈련시킨다고?”라는 뉴스레터를 보내드렸어요. 사람의 뇌파를 추출해서 로봇에게 먹이는 기술. 즉, 뇌를 빌려주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이번 주 Nature Medicine에 발표된 논문은 정확히 반대 방향이에요. 뇌에 전극을 심어서, 말을 잃은 사람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준 기록이에요.

Casey Harrell, 47세, ALS1​ 환자, 기후 활동가. 이 사람이 뇌에 칩을 심은 채 3년 동안 쌓아올린 숫자가 있어요. 3,800시간 독립 사용, 200만 단어, 분당 56단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숫자들이 증명한 건 정확도가 아니라 독립성이에요. 그리고 이 전환이 BCI2​ 기술 전체의 지형을 바꾸고 있어요.

말을 잃은 남자의 3,800시간

Casey Harrell의 이야기는 2023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가요. UC Davis의 신경외과 의사 David Brandman이 그의 왼쪽 전중심이랑3​에 4개의 마이크로전극 어레이를 이식했어요. 전극 수는 총 256개. 이 전극들이 하는 일은 단순해요. Harrell이 말하려고 ‘시도’할 때 뇌의 운동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는 거예요.

핵심은 여기에요. ALS로 입 근육이 마비되어 실제로 소리를 낼 수 없지만, 뇌는 여전히 말하기 명령을 보내고 있어요. 전극이 이 명령을 잡아내고, 머신러닝 소프트웨어가 그 패턴을 음소 단위로 해독해서 텍스트로 변환하는 구조예요. 변환된 텍스트는 Harrell의 ALS 발병 이전 목소리를 복제한 음성 합성기를 통해 소리로 나와요. 딸은 아버지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이 장치 덕분에 아버지가 책을 읽어주는 걸 들을 수 있어요.

2026년 6월 Nature Medicine에 발표된 이 논문의 핵심 결과를 정리하면 이래요.

  • 3,800시간+ 가정에서 독립 사용 (연구자 감독 없이)
  • 183,000문장, 약 200만 단어 생성
  • 통제 환경 정확도 99%, 일상 사용 정확도 92% (Harrell 본인 자가 평가)
  • 평균 속도 분당 56단어 (느린 일상 대화 수준)
  • 작동 어휘 약 125,000단어 — 성인 영어 화자가 일상에서 쓰는 거의 모든 단어 이 숫자들 자체도 놀랍지만, 진짜 의미는 다른 곳에 있어요. 이전까지 BCI 연구의 한계는 ‘정확도’가 아니라 ‘독립성’이었거든요. 아무리 정확해도 연구자가 매번 옆에 앉아서 시스템을 세팅해줘야 한다면, 그건 기술 시연이지 삶의 도구가 아니에요. Harrell의 경우, 간병인이 아침에 두 개의 도킹 포트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그 뒤로는 혼자서 12시간 이상 연속 사용하기도 해요. 이메일을 쓰고, 웹을 서핑하고, 기후 운동가로서 풀타임 직업 활동을 유지하고 있어요. 연구팀은 시간이 지나면서 프라이버시 모드와 비속어 필터 같은 기능도 추가했어요. 비속어 필터는 Harrell이 딸과 대화할 때 디코딩 오류로 욕설이 나오는 걸 방지하는 기능이에요. 이런 세부 기능은 실험실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어요. 실제 삶에서 매일 쓰는 사람이 있어야만 생기는 요구사항이거든요.

Harrell이 참여하고 있는 BrainGate2 임상시험은 20년 넘게 이어져 온 프로젝트예요. 처음 17년은 뇌 신호로 커서를 움직이고 클릭하는 ‘포인트 앤 클릭’ 방식에 집중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음성 디코딩으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연구 책임자 Brandman은 이렇게 표현했어요. BCI가 수년간 통제된 연구실에서만 존재하는 개념 증명 장치였는데, 이제 그 문턱을 넘었다고요. 그는 BCI의 현재 위치를 1950년대 페이스메이커에 비유했어요. 당시 페이스메이커는 벽에 있는 배터리에 직접 연결해야 했어요. 70년이 지난 지금, 페이스메이커는 외래 시술로 심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의료기기가 됐죠.

67명에서 150명으로, 임계점을 넘다

Harrell은 혼자가 아니에요. BCI 분야 전체가 지금 급격한 전환기에 있어요.

2024년에 Michelle Patrick-Krueger(당시 휴스턴대학교) 연구팀이 1998년부터 2023년 말까지 수행된 모든 BCI 임상시험을 정리한 라운드업 논문을 발표했어요. 결과는 21개 연구 그룹, 총 67명의 자원자. 25년간 전 세계에서 뇌에 전극을 심은 사람이 67명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유트레흐트 대학병원의 BCI 연구자 Mariska Vansteensel에 따르면, 2024년 이후 이 숫자가 2배 이상으로 뛰었어요. 현재 추정치는 약 150명이에요.

이 급증을 이끈 건 기업과 국가 양쪽이에요.

기업 쪽부터 보면, Neuralink는 2026년 1월 기준 21명에게 칩을 이식했다고 발표했어요. 첫 환자 Noland Arbaugh(29세, 사지마비)는 생각만으로 커서를 움직이고, 게임을 하고, SNS에 글을 올려요. Neuralink는 2026년 고용량 생산과 거의 완전 자동화된 수술 절차로의 전환을 예고했고, 수술 로봇 R1은 단일 전극 삽입 시간 1.5초, 삽입 깊이 50mm 이상을 달성해서 인간 뇌 해부학적 변이의 99%를 커버한다고 밝혔어요.

혈관 경유 방식의 Synchron은 두개골을 열지 않고 카테터로 뇌 정맥에 스텐트형 전극(Stentrode)을 설치하는 접근을 취하고 있어요. 2025년 11월 2억 달러 Series D를 유치했고, 2026년 FDA 피벗 시험을 준비 중이에요. 뇌 표면에 전극을 올려놓는 Precision Neuroscience, 완전 이식형 무선 BCI를 개발하는 CorTec 등도 임상을 진행하고 있어요.

국가 쪽에서 가장 주목할 움직임은 중국이에요. 3월 뉴스레터에서 “중국이 기술→표준→산업화 파이프라인을 체계적으로 깔고 있다”고 짚었는데,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나왔어요.

2026년 3월 13일, 중국 NMPA(국가약품감독관리국)가 상하이 기반 Neuracle Technology의 NEO를 승인했어요. 세계 최초로 침습적 BCI가 임상시험을 넘어 상용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거예요. NEO는 경막4​ 위에 놓는 동전 크기의 무선 장치로, 뇌 조직을 관통하지 않아요. 경추 척수 손상으로 사지마비가 온 18~60세 환자가 대상이고, 공압 장갑을 통해 손 잡기 기능을 복원하는 구조예요. 임상 근거는 36건 이식(타당성 4건 + 다기관 확증 32건), 18개월 추적, 심각한 기기 관련 이상반응 0건이에요.

더 놀라운 건 승인 이후의 속도예요. NMPA 승인 48시간 만에 국가의보험국(NHSA)이 NEO에 의료보험 소모품 분류 코드를 부여했어요. 업계에서는 “초고속 코딩”이라고 불렀어요. 3개월 후인 6월 11일, Neuracle는 상하이 STAR Market에 IPO를 신청했어요. 목표 조달액 25억 위안(약 3,450억 원). 이 중 15.4억 위안이 BCI 연구에, 4.1억 위안이 생산 시설에 배정됐어요.

비교하면 이래요.Neuralink는 20명 이상에게 이식했지만, 전부 연구 프로토콜 하에서예요. FDA 시판 허가는 빨라야 2028~2029년으로 추정돼요. 중국은 기술만 앞선 게 아니라, 승인→보험→자본시장이라는 제도적 파이프라인을 먼저 깔아놓은 거예요.

아직 모르는 것, BCI가 멈추는 이유

여기까지 읽으면 BCI가 곧 일상 의료기기가 될 것 같지만,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어요.

BCI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는 경우가 있고,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아직 모른다는 거예요.

현재까지 대부분의 BCI 임상은 척수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했어요. 이 환자들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지만 얼굴 표정이나 말하기에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ALS 환자에 대한 데이터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어요.

문제는 ALS의 진행 과정에 있어요. ALS는 운동 신경을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질병이에요. 초기에는 팔다리만 마비되지만(잠금증후군, Locked-In Syndrome), 결국 눈 움직임마저 잃는 완전 잠금 상태(Completely Locked-In State, CLIS)로 진행될 수 있어요. 그리고 일부 사례에서, 초기에 BCI가 잘 작동하던 환자가 CLIS로 진행되면서 BCI 제어 능력을 상실했어요.

왜 그런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아요. 가설은 여러 개예요. 시각 장애로 피드백 루프가 끊기는 것, 목표 지향적 인지 자체가 변하는 것, 유발 전위5​의 패턴이 달라지는 것. 하지만 어느 것도 확정적이지 않아요. 2022년에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CLIS 환자 사례에서 BCI 기반 의사소통에 성공한 보고가 있지만, 이건 단 한 건이에요.

Casey Harrell의 기록이 예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3년간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건 ALS 환자에서의 장기 BCI 사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예요. 하지만 연구팀도 인정했듯이, 한 명의 성공 사례가 모든 ALS 환자에게 적용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질병이 진행되면서 신경 신호가 어떻게 변하는지, BCI가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 이건 더 많은 자원자와 더 긴 시간의 연구를 통해서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에요.

오스왈드의 시선

3월에 “뇌파를 로봇에게 먹이는(학습시키는)” 기술을 다루고, 이번에 “뇌에 기술을 심어 말을 되찾는” 사례를 다루면서, 저는 BCI라는 기술이 가진 양면성이 더 선명하게 보여요.

한쪽에서는 인간의 뇌파를 추출해서 로봇의 학습 데이터로 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술을 뇌에 이식해서 잃어버린 능력을 복원하고 있어요. 추출과 복원. 같은 기술의 양 끝이에요. 3월에 제가 던졌던 질문  “누구의 뇌파인가” 은 복원 쪽에서도 변주되어 나타나요. “누구의 뇌에 이 기술을 심을 것인가, 그 비용과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GTM 전략을 수립해온 경험에서 보면, 기술이 실험실을 벗어나 시장으로 나오는 순간에는 항상 같은 패턴이 있어요. 첫 번째 실제 사용자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해요. Casey Harrell이 BCI의 “첫 번째 파워 유저”라는 건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에요. 3,800시간의 실사용 데이터는 어떤 통제된 실험도 대체할 수 없는 증거거든요. 페이스메이커가 70년에 걸쳐 벽 연결 장치에서 외래 시술 기기가 됐는데, BCI도 같은 경로에 올라선 거예요. 다만 속도는 훨씬 빠를 수 있어요.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첫째, Casey Harrell의 3,800시간은 BCI가 ‘연구실 시연’에서 ‘일상 도구’로 전환되는 문턱을 넘었다는 증거예요.

둘째, 전 세계 BCI 이식 환자가 2년 만에 67명에서 150명으로 2배 이상 늘었고, 중국은 세계 최초 상용 BCI 승인으로 제도적 선점에 나섰어요.

셋째, ALS 환자에서 BCI가 멈추는 이유는 아직 모르고, 이 질문에 답하려면 더 많은 자원자와 더 긴 연구가 필요해요.

구독자님은 BCI 기술이 ‘의료기기’로 남을 거라고 보시나요, 아니면 스마트폰처럼 일상 인터페이스가 될 거라고 보시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각주

  1. 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운동 신경을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에요. 팔다리 마비에서 시작해 말하기, 삼키기, 호흡까지 영향을 미쳐요. 루게릭병이라고도 불러요.

  2. BCI (Brain-Computer Interface,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뇌의 전기 신호를 읽어서 컴퓨터에 명령을 전달하는 기술이에요. 3월 뉴스레터에서 로봇 훈련용으로 소개했던 그 기술의 다른 방향이에요.

  3. 전중심이랑 (Precentral Gyrus): 대뇌 피질에서 수의적 운동 명령을 보내는 영역이에요. 말하기를 담당하는 운동 피질이 여기에 있어서, 음성 BCI는 주로 이 부위의 신호를 읽어요.

  4. 경막 (Dura Mater): 뇌를 감싸는 세 겹의 막 중 가장 바깥쪽 막이에요. Neuracle의 NEO는 이 막 위에 전극을 올려놓는 방식이라 뇌 조직을 직접 관통하지 않아요.

  5. 유발 전위 (Evoked Potential): 특정 자극(소리, 빛, 촉각 등)에 반응해서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예요. BCI가 사용자의 의도를 읽는 데 활용하는 핵심 신호 중 하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