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제72호

철학 박사가 "인문학은 끝났다"고 말할 때

세상은 시소가 아니에요. 한쪽이 뜬다고 다른 쪽이 바닥으로 꺼지는 일은 거의 없어요..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최근,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니면 반대로, 기존에 대학에서 행하던 인문적 교육이 쓸모없어진다는 이야기

철학 박사가 "인문학은 끝났다"고 말할 때

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최근,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있나요? 아니면 반대로, 기존에 대학에서 행하던 인문적 교육이 쓸모 없어진다는 이야기는요?

올해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가 블랙록 CEO 래리 핑크와 나눈 대화가 화제가 됐어요. AI가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에 카프는 이렇게 답했어요.

“인공지능은 (기존 대학에서 교육받은)인문학 출신자들이 찾는 일자리를 파괴할 겁니다.”

그리고 3월에는 한 발 더 나갔어요. 미래가 보장되는 사람은 두 부류뿐이라고요. 직업훈련을 받은 사람, 아니면 신경다양성1​을 가진 사람. 흥미로운 건, 카프 자신이 해버포드 칼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로스쿨을 거쳐, 독일 괴테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본인 스스로를 예로 들면서 “이 스킬은 시장에서 팔기 어려울 겁니다”라고 말한 거죠.그러니 이 주장은 더 매력적으로 들렸어요.

카프의 이 발언은 단발성이 아니에요. 그는 작년 Axios 인터뷰에서도 “예일에 갈 만한 높은 IQ를 가졌지만 범용적 지식만 있고 전문성이 없다면, 끝장”이라고 했어요. 일관되게 전통적 엘리트 교육에 대한 회의를 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과연 이 주장은 데이터와 부합할까요?

🔍 카프가 말한 것,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

카프의 주장을 정리하면 구조가 선명해요.

AI가 코딩이나 리서치 같은 지식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면, 엘리트 대학에서 범용적 인문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경제적 가치가 급락한다는 거예요. 반면 배터리를 조립하거나 드론 영상을 분석하는 직업훈련 인력은 AI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올라간다고요.

실제로 고용 데이터가 이 방향을 일부 뒷받침하기도 해요.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22~27세 대졸 신규 졸업자의 실업률은 2025년 4분기 기준 약 5.7%까지 올랐어요. 같은 시기 전체 실업률이 4.2%였으니까, 대졸자가 오히려 평균보다 높은 실업률을 기록한 거예요. 불완전 고용률2​은 42.5%로 2020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고요.

하지만 카프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그가 팔란티어에서 매일 한다고 말한 일 “누군가의 아웃라이어 적성을 찾아내서, 그 일에 집중시키고, 본인이 잘한다고 착각하는 다른 다섯 가지에서 떼어놓는 것” 이건 본질적으로 인문학적 역량이에요. 사람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고,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능력. 철학 박사 학위가 쓸모없다고 말하는 철학 박사가, 매일 철학적 사고를 하고 있는 셈이에요.

또 하나 짚어볼 게 있어요. 카프가 2025년에 만든 메리토크라시 펠로우십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유급 인턴십을 제공하고 팔란티어 정규직 면접 기회까지 주는 구조예요. 월 5,400달러의 수당에 “빚을 건너뛰세요, 인생의 시간을 되찾으세요”라는 메시지를 내세우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하는 건 뭘까요?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실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거예요. 결국 인문학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교육을 제공하는 기존 대학 시스템을 부정하고 자기 회사가 대안이 되겠다는 이야기에 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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