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제73호 ·

철학 박사가 "인문학은 끝났다"고 말할 때

세상은 시소가 아니에요. 한쪽이 뜬다고 다른 쪽이 바닥으로 꺼지는 일은 거의 없어요..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최근,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니면 반대로, 기존에 대학에서 행하던 인문적 교육이 쓸모없어진다는 이야기

철학 박사가 "인문학은 끝났다"고 말할 때

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최근,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있나요? 아니면 반대로, 기존에 대학에서 행하던 인문적 교육이 쓸모 없어진다는 이야기는요?

올해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가 블랙록 CEO 래리 핑크와 나눈 대화가 화제가 됐어요. AI가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에 카프는 이렇게 답했어요.

“인공지능은 (기존 대학에서 교육받은)인문학 출신자들이 찾는 일자리를 파괴할 겁니다.”

그리고 3월에는 한 발 더 나갔어요. 미래가 보장되는 사람은 두 부류뿐이라고요. 직업훈련을 받은 사람, 아니면 신경다양성1​을 가진 사람. 흥미로운 건, 카프 자신이 해버포드 칼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로스쿨을 거쳐, 독일 괴테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본인 스스로를 예로 들면서 “이 스킬은 시장에서 팔기 어려울 겁니다”라고 말한 거죠.그러니 이 주장은 더 매력적으로 들렸어요.

카프의 이 발언은 단발성이 아니에요. 그는 작년 Axios 인터뷰에서도 “예일에 갈 만한 높은 IQ를 가졌지만 범용적 지식만 있고 전문성이 없다면, 끝장”이라고 했어요. 일관되게 전통적 엘리트 교육에 대한 회의를 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과연 이 주장은 데이터와 부합할까요?

🔍 카프가 말한 것,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

카프의 주장을 정리하면 구조가 선명해요.

AI가 코딩이나 리서치 같은 지식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면, 엘리트 대학에서 범용적 인문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경제적 가치가 급락한다는 거예요. 반면 배터리를 조립하거나 드론 영상을 분석하는 직업훈련 인력은 AI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올라간다고요.

실제로 고용 데이터가 이 방향을 일부 뒷받침하기도 해요.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22~27세 대졸 신규 졸업자의 실업률은 2025년 4분기 기준 약 5.7%까지 올랐어요. 같은 시기 전체 실업률이 4.2%였으니까, 대졸자가 오히려 평균보다 높은 실업률을 기록한 거예요. 불완전 고용률2​은 42.5%로 2020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고요.

하지만 카프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그가 팔란티어에서 매일 한다고 말한 일 “누군가의 아웃라이어 적성을 찾아내서, 그 일에 집중시키고, 본인이 잘한다고 착각하는 다른 다섯 가지에서 떼어놓는 것” 이건 본질적으로 인문학적 역량이에요. 사람을 읽고, 맥락을 파악하고,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능력. 철학 박사 학위가 쓸모없다고 말하는 철학 박사가, 매일 철학적 사고를 하고 있는 셈이에요.

또 하나 짚어볼 게 있어요. 카프가 2025년에 만든 메리토크라시 펠로우십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유급 인턴십을 제공하고 팔란티어 정규직 면접 기회까지 주는 구조예요. 월 5,400달러의 수당에 “빚을 건너뛰세요, 인생의 시간을 되찾으세요”라는 메시지를 내세우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하는 건 뭘까요?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실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거예요. 결국 인문학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교육을 제공하는 기존 대학 시스템을 부정하고 자기 회사가 대안이 되겠다는 이야기에 가까워요.

🔄 반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

카프의 발언이 나온 직후, 정반대 방향의 목소리들이 쏟아졌어요.

앤트로픽 공동창업자 다니엘라 아모데이는 ABC 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앤트로픽이 채용할 때 보는 것은 뛰어난 소통 능력, 높은 감성 지능, 친절함과 호기심이라고요. 아모데이 본인도 UC 산타크루즈에서 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리고 인문학 공부가 앞으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단언했어요.

맥킨지의 글로벌 매니징 파트너 밥 스턴펠스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팟캐스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AI 모델이 문제 해결에는 뛰어나지만, 논리의 불연속적 도약—즉 창의적 판단—은 못 한다고요. 그래서 이전에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리버럴 아츠 전공자들을 다시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했어요.맥킨지는 실제로 채용 면접에 자체 AI 도구 Lilli를 도입해서, 지원자가 AI 산출물에 얼마나 비판적 판단을 더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 있어요.

블랙록 COO 로버트 골드스타인도 금융이나 기술과 전혀 관련 없는 전공자를 채용하고 있다고 했고요. 코그니전트 CEO 라비 쿠마르도 리버럴 아츠 대학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인재를 모집 중이라고 밝혔어요. 마이크로소프트 수석 과학자 제이미 티반도 다음 세대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했고요. 메타인지 능력—유연성, 적응력, 비판적으로 도전하는 역량—이 핵심이 될 거라는 이야기예요.

데이터도 이 방향을 뒷받침해요. 딜로이트가 1,40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인간 스킬과 기술 스킬에 동등한 비중을 두는 조직이 변화하는 업무 환경에 더 민첩하게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기술 스킬의 반감기3​가 점점 짧아지는 상황에서, 기술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이래요. AI를 만드는 사람(아모데이)은 인문학이 더 중요해진다고 하고, AI를 파는 사람(카프)은 인문학이 끝났다고 해요. AI를 활용해서 컨설팅하는 사람(맥킨지)은 인문학 전공자를 다시 채용하고 있고요.

⚖️ 시소는 없다

여기서 한 발 물러나 볼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카프도 틀렸고, “인문학이 구원이다”도 과장이에요. 세상은 시소가 아니거든요. 하나가 올라간다고 다른 하나가 극단적으로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실제 데이터를 보면 훨씬 복잡한 그림이 나와요. 골드만삭스 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대졸자 실업률 상승의 상당 부분은 AI 때문이 아니라 고용 시장 전반의 회전율 저하(즉, 채용도 안 하고 해고도 안 하는 ‘저회전 시장’)에서 비롯된 거예요. 정보 서비스, 금융, 전문 비즈니스 서비스 같은 대졸자 비중이 높은 산업의 월평균 신규 고용이 2023~2025년 사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어요. 건설, 운송, 소매 같은 비대졸자 비중이 높은 산업은 같은 기간 월 1만 2천 건 이상 순증했고요.

그러니까 지금 벌어지는 일은 “인문학 전공이라서 취업이 안 되는 것”이 아니에요. 구조적으로 지식노동 산업 자체의 채용이 얼어붙은 거예요. 그리고 이 현상은 AI가 상용화되기 이전인 2023년부터 시작됐어요.

숫자를 좀 더 들여다보면요. 링크드인 데이터에 따르면 엔트리 레벨 채용은 2019년 4월 대비 17% 감소했어요. 교육 기술 기업 센게이지 그룹의 2025년 조사에서는 졸업생의 30%만이 자기 전공 분야에서 풀타임 일자리를 구했다고 응답했고요. 전국대학취업협의회(NACE) 조사에서는 고용주의 51%가 올해 졸업생 취업 시장을 ‘나쁘거나 보통’이라고 평가했어요. 2020~21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에요.

이건 인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신규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막히고 있는 현상이에요. 블랙록 CEO 래리 핑크조차 2026년 졸업생이 수년 내 가장 높은 실업률을 경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AI가 엔트리 레벨 역할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카프와 한 무대에 섰던 바로 그 사람이에요.

동시에, 인문학 교육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현실과 맞지 않아요.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대졸 청년의 구직 성공률(job-finding rate)이 고졸 청년과 거의 같은 수준까지 떨어졌어요. 이 추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장기 흐름이에요. 대졸 학위가 주는 ‘안전 프리미엄’이 축소되고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워요. 비판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한편, 카프의 “AI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전망 자체도 과장된 측면이 있어요. 포브스의 2025년 AI 서베이에 따르면, 최고인사책임자(CHRO)의 94%가 향후 2년간 AI로 인해 없어질 일자리가 전체의 5% 미만이라고 예측했어요. 68%는 자사에 인간-AI 협업 전략이 이미 있다고 답했고요. 현장의 목소리는 카프의 종말론보다 훨씬 온건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카프와 아모데이 둘 다 자기 포지션에서 유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봐요.

카프에게 “인문학은 쓸모없다”는 팔란티어의 메리토크라시 펠로우십(고졸자를 직접 채용해서 대학을 건너뛰게 하는 프로그램)을 정당화하는 내러티브예요. 아모데이에게 “인문학이 더 중요해진다”는 앤트로픽이 추구하는 ‘안전한 AI’ 브랜딩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고요.

GTM 전략을 수립해온 경험에서 보면, 이런 이분법은 시장에서 거의 성립하지 않아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거예요: 인문학적 역량과 실행 가능한 기술 스킬을 동시에 가진 사람과, 둘 중 하나만 가진 사람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

카프가 예시로 든 전직 경찰관(커뮤니티 칼리지를 나와서 지금은 미 육군의 Maven 시스템(팔란티어가 만든 AI 도구)을 운영하는 사람)이 가치 있는 이유는 직업훈련 자체가 아니에요. 도메인 경험과 새로운 맥락에 적응하는 능력의 조합이에요. 그리고 후자, 즉 ‘새로운 맥락에 적응하는 능력’은 인문학이 훈련시키는 바로 그 근육이에요.

맥킨지가 채용 면접에서 AI 도구 Lilli를 쓰게 하면서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AI가 뱉어낸 산출물을 그대로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에 호기심과 판단력을 더할 수 있는 사람. 이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스킬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의 문제예요.

맥킨지의 숫자가 이걸 잘 보여줘요. 1년 반 전에 3,000개였던 AI 에이전트가 지금은 2만 개예요. 직원 4만 명에 에이전트 2만 개. 스턴펠스는 18개월 안에 직원 1명당 에이전트 1개 이상이 될 거라고 했어요. 이 환경에서 가치가 높은 사람은 AI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협업해서 AI 혼자서는 못 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판단 능력의 원천은 코딩 부트캠프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맥락을 읽고, 질문을 던지고, 전제를 의심하는 훈련에서 와요.

제가 봤을 때, 앞으로 5년간 가장 위험한 포지션은 인문학 전공자도 직업훈련 이수자도 아니에요.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기술이든 인문학이든.

마치며

제가 오늘 뉴스레터를 쓰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간단해요. 어디서는 이제 인문학의 시대가 왔다고 하면서 문과의 시대가 왔다. 코딩은 쓸모 없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포스팅이 올라오고, 어디서는 인공지능 만만세를 외치며 기술 최고 이제 기존 교육체계는 파괴될 것! 등의 이야기를 소비하며 다들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 능력” 등이 중요해진다를 외치면서 정작 이건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있더라구요. 🤷

  • 카프의 경고에는 일리가 있어요. 범용적 인문학 교육만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건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어요.
  • 하지만 인문학이 “끝났다”는 건 자기 회사의 채용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내러티브에 가까워요. 그가 매일 하는 일 자체가 인문학적 역량을 필요로 하니까요.
  • 진짜 질문은 “인문학이냐, 직업훈련이냐”가 아니에요. “자기 역량을 구체적 문제에 연결할 수 있느냐”예요. 전공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에요. 다음에 누군가 “AI 시대에는 인문학이 쓸모없다” 또는 “AI 시대에는 인문학이 더 중요해진다”고 이야기하면, 한 가지만 물어보세요. “그래서 이 사람이 뭘 팔고 있는 거지?”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각주

  1. 신경다양성 (Neurodivergence): ADHD, 자폐 스펙트럼, 난독증 등 신경학적으로 다수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특성을 말해요. 카프 본인도 난독증이 있고, 이를 팔란티어의 성공 요인으로 꼽아왔어요.

  2. 불완전 고용 (Underemployment): 대학 학위가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대졸자의 비율이에요. 취업은 했지만 자신의 교육 수준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3. 기술 스킬의 반감기 (Half-life of Technical Skills): 특정 기술 역량이 시장에서 가치를 유지하는 기간이에요. 예를 들어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나 도구의 수요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해요. AI 시대에 이 반감기가 빠르게 짧아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