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제71호

옥수수 밭에서 시작된 이론이 지금도 통하는 이유

기술의 속도는 바뀌었지만, 사람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어요

옥수수 밭에서 시작된 이론이 지금도 통하는 이유

들어가며

구독자님, 하나 재밌는 질문을 던져볼게요. 1940년대 미국 아이오와주 옥수수 농부들과 2026년 AI를 도입하려는 기업 임원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둘 다 “이게 좋은 건 알겠는데, 나는 좀 더 지켜보겠다”고 말했어요.

지난주 딜로이트가 발표한 2026 State of AI in the Enterprise 보고서를 보면, 기업의 88%가 AI를 하나 이상의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같은 보고서에서, 실제로 파일럿 단계를 넘어 조직 전체로 확장한 기업은 40% 미만이에요. PwC의 2026 글로벌 CEO 서베이에서는 더 솔직한 숫자가 나와요. CEO의 56%가 AI 투자에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고 답했거든요.

기술은 넘쳐나는데, 확산은 멈춰 있는 이 현상. 1991년에 나온 한 권의 책이 이걸 정확히 설명하고 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옥수수 밭에서 태어난 확산 이론

캐즘(chasm)이라는 단어는 원래 지질학 용어예요. 땅이나 얼음이 갈라져 생긴 깊은 균열을 뜻하죠. 이 단어가 경영학과 마케팅의 핵심 개념이 되기까지는, 의외의 출발점이 있어요. 옥수수 밭이에요.

1941년,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의 사회학자 브라이스 라이언(Bryce Ryan)과 대학원생 닐 그로스(Neal C. Gross)는 흥미로운 연구를 시작해요. 당시 아이오와주에는 기존 품종보다 수확량이 약 20% 높고, 가뭄에도 강한 개량 옥수수 종자(하이브리드 종자)가 보급되고 있었어요. 1928년에 개발된 이 종자는 객관적으로 우월했지만, 농부들의 수용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어요.

라이언과 그로스는 아이오와주 두 개 농촌 커뮤니티의 농부 257명을 직접 인터뷰해요. 그리고 놀라운 패턴을 발견하죠. 새 종자에 대한 정보를 들은 시점은 농부들 사이에서 크게 차이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실제로 채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최대 7년 차이가 났어요. 초기에는 종자 회사 영업사원의 설명이 주요 정보 경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웃 농부의 경험담이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이 1943년 논문1​은 이후 사회학의 판도를 바꿔놓아요. 1962년, 오하이오 주립대의 사회학자 에버릿 로저스(Everett Rogers)가 이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Diffusion of Innovations(혁신의 확산)을 출간하거든요. 로저스는 사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이 퍼져나가는 과정을 다섯 그룹으로 나눴어요.

  • 혁신가(Innovators): 전체의 2.5%. 기술 그 자체에 매료되는 사람들
  • 선각수용자(Early Adopters): 13.5%. 기술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보는 비전가
  • 전기다수(Early Majority): 34%. 검증된 제품을 원하는 실용주의자
  • 후기다수(Late Majority): 34%. 주류가 된 후에야 움직이는 보수적 사용자
  • 지각수용자(Laggards): 16%. 변화를 마지막까지 거부하는 그룹 이 모델은 라디오, TV, 전화 등 20세기 주요 기술의 확산을 잘 설명했어요. 수용자 그룹이 순차적으로 넘어가면서 S자 곡선을 그리며 시장이 포화에 도달하는 패턴이었죠. 수십 년간 이 모델은 거의 공식처럼 통했어요.

그런데 1980년대,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컴퓨터, 소프트웨어 같은 정보기술 제품들이 선각수용자에서 전기다수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갑자기 수요가 뚝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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