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테크제20호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인재 전쟁에서 지고 있다

GDP 대비 R&D 투자 세계 2위인 한국이, 인재 경쟁력 순위에서 25위 밖으로 밀려난 이유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인재 전쟁에서 지고 있다

들어가며

구독자님, 요즘 뉴스를 보면 ‘인재 전쟁’이라는 단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해요. 미국과 중국의 AI 인재 쟁탈전, 실리콘밸리 과학자들의 유럽 이주… 그런데 이 전쟁의 진짜 승패를 가르는 건 누가 더 많은 돈을 쓰느냐가 아니에요.

한국은 R&D에 GDP 대비 약 5%를 쓰고 있어요.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에요. 프랑스는 약 2.2%로 한국의 절반도 안 돼요. 그런데 지금 전 세계 과학자들이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 있어요. 한국행 비행기는 아니에요.

오늘은 글로벌 인재 전쟁의 지형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이 이 전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H-1B: 혁신의 연료에서 정치적 뇌관으로

이 이야기의 시작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미국은 냉전이 끝나고 정보기술 시대가 열리면서, 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를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H-1B 비자를 만들었어요. 1990년 이민법(Immigration Act of 1990)을 통해 탄생한 이 비자는 연간 6만 5천 명 한도로 고급 전문직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이는 제도였어요.

효과는 즉각적이었어요. 닷컴 붐 시기에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스타트업들이 H-1B를 통해 글로벌 엔지니어를 대거 채용했고, 한때 의회는 연간 한도를 19만 5천 명까지 늘리기도 했어요. H-1B는 말 그대로 실리콘밸리의 연료였던 거예요.

그런데 이 비자의 성격이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해요. 2000년대 중반부터 인포시스, 타타, 코그니전트 같은 IT 아웃소싱 기업들이 H-1B의 최대 사용자로 떠올랐어요. 이들은 인도에서 중간급 기술자를 대량으로 데려와 미국 내 일자리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비자를 활용했죠. ‘초엘리트 인재를 위한 비자’라는 원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거였어요.

결정적 전환점은 2016년이에요. 러스트벨트1​의 백인 노동자들이 H-1B를 ‘일자리를 빼앗는 비자’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분노를 정치적으로 흡수했어요. 2025년에는 H-1B 신규 신청에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까지 내려졌어요. 혁신의 도구가 정치적 뇌관이 된 거예요.

그리고 비자 정책만 바뀐 게 아니에요.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과학 예산도 대폭 삭감했어요. 미국 국립보건원(NIH) 예산은 약 480억 달러에서 40% 가까이 삭감 논의가 진행됐고, 컬럼비아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같은 명문 대학들은 연구비 동결과 소송에 휘말렸어요. 미국의 과학 생태계 전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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