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만에 우리는 포기를 배웠다
문자도, 계산기도, 구글도 똑같이 걱정했어요. 그런데 이번엔 결이 좀 달라요
들어가며
구독자님,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걱정했어요. 글로 적어두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애써 기억하지 않을 거라고요. 전신이 등장했을 땐 시(詩)가 끝날 거라는 예언이 나왔고, 계산기가 보급되자 암산 능력이 사라질 거라는 우려가 뒤따랐어요. 그리고 구글이 등장했죠.
매번 똑같았어요. 새 도구가 나올 때마다 “이러다 우리 뇌가 망가진다”는 걱정이 반복됐고, 대체로 그런 파국은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요즘 “AI가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는 이야기도 낡은 레퍼토리의 반복처럼 들려요.
그런데 최근 발표된 연구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저는 이번엔 좀 다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AI는 검색이나 계산기와 달리 ‘생각 그 자체’를 대신하는 첫 도구예요. 그리고 초기 연구들은 이미 작지만 분명한 경고음을 내고 있어요.
🧩 매번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1년,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를 알려주면서 “이건 나중에 컴퓨터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하면, 정보 자체보다 ‘어디서 찾는지’를 더 잘 기억하더라는 거예요. 연구팀은 이걸 ‘구글 효과(Google Effect)‘라고 불렀어요. 기억을 구글에 살짝 아웃소싱하기 시작한 셈이죠.
그때도 걱정과 반박이 팽팽했어요. 한쪽에서는 “구글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고 했고(2008년 애틀랜틱의 유명한 표지 기사였죠), 다른 쪽에서는 “도서관을 뒤지던 시간을 아껴 더 깊은 사고에 쓸 수 있다”고 했어요. 계산기도 비슷했어요. 암산은 약해졌을지 몰라도, 우리는 계산기 덕분에 더 복잡한 수학을 다룰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AI를 계산기에 빗대는 사람이 많아요. 샘 올트먼도 그중 하나예요. 그런데 이 비유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이 있어요. AI와 인지 능력에 관해 가장 많이 인용된 연구를 내놓은 MIT의 나탈리야 코스미나예요. “계산기를 안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지는 않잖아요. 계산기한테 머릿속 고민을 다 털어놓지도 않고요.” 도구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거예요.
📊 연구실에서 벌어진 일들
코스미나 팀의 실험부터 볼게요. 참가자 54명을 세 그룹으로 나눴어요. 한 그룹은 ChatGPT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1을, 다른 그룹은 구글 검색을, 마지막 그룹은 아무 도구 없이 자기 머리만 써서 에세이를 썼어요. 뇌파(EEG)2를 측정했더니, 뇌 연결성이 가장 활발했던 건 ‘맨머리’ 그룹이었고, 언어 모델 그룹이 가장 약했어요. 게다가 AI로 글을 쓴 사람들은 방금 자기가 쓴 문장을 제대로 인용하지도 못했고, “이 글이 내 것”이라는 느낌도 가장 낮았어요.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고요.
실험실 얘기만이 아니에요. 와튼스쿨 연구팀은 튀르키예의 고등학생 약 1,000명에게 AI 수학 튜터를 붙여줬어요. 하나는 평범한 ChatGPT 같은 도구였고, 다른 하나는 정답을 바로 주는 대신 힌트를 건네고 교사가 만든 풀이와 오답 노트를 반영한 ‘가드레일’ 버전이었어요. 연습 단계에서는 둘 다 성적이 좋았어요. 특히 가드레일 버전을 쓴 학생들은 연습 문제를 무려 127% 더 많이 맞혔죠. 그런데 AI를 치우고 시험을 보게 하자 풍경이 뒤집혔어요. 평범한 ChatGPT형 도구를 쓴 학생들이 오히려 AI를 아예 안 쓴 학생들보다 못했거든요. 연습장에서 잠깐 빌린 실력이, 정작 혼자 서야 할 때는 남아 있지 않았던 거예요.
가장 서늘한 건 카네기멜런대 그레이스 리우 팀의 최근 연구예요. 참가자들에게 분수 문제를 풀게 했는데, 한 그룹은 앞의 12문제를 AI 도움으로 풀 수 있었어요. 대신 마지막 3문제는 혼자 풀어야 했죠. AI를 쓴 그룹은 앞 12문제는 잘 풀었지만, 마지막 3문제에서는 더 자주 틀리고 더 자주 포기했어요. 이 변화가 나타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단 10분이었어요. 연구진은 지금의 AI를 이렇게 표현했어요. “멘토는 답만 주지 않아요. 배움을 설계하고, 상대의 성장을 즉각적인 결과보다 앞에 둬요. 반면 지금의 AI는 즉각적이고 완결된 답을 주도록 최적화된, 근시안적인 협업자예요. 단 한 번도 ‘안 돼’라고 말하지 않죠.”
낯익은 패턴이죠. 사실 우리는 비슷한 걸 GPS에서 이미 겪었어요. 2020년 맥길대 연구를 보면, GPS에 오래 의존한 사람일수록 GPS 없이 길을 찾을 때 공간 기억력이 떨어졌어요. 3년 뒤 다시 측정했더니, 그사이 GPS를 더 많이 쓴 사람은 공간 기억력 저하가 더 가팔랐고요.
창의력은 어떨까요. 조지타운대 연구팀은 대학 지원 에세이 37만 건 이상을 ChatGPT 등장 전후로 비교했어요. 흥미롭게도 AI가 개입한 에세이는 단어가 더 화려하고 다양했어요. 그런데 담긴 ‘아이디어’는 오히려 더 비슷비슷해졌어요. 표현은 풍부해졌는데 생각은 한곳으로 수렴한 거예요. 연구를 이끈 애덤 그린의 말이 정곡을 찔러요. “구글은 내가 찾으려던 걸 찾도록 도와줘요. 그런데 AI는 무엇을 찾을지까지 대신 생각해줘요.”
여기서 잠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해요. 이 연구들은 대부분 표본이 작고, 관찰 기간이 짧고, 아직 동료 심사3를 거치지 않은 것도 많아요. 리우 본인도 선을 그었어요. “10분 사용으로 장기적인 뇌 변화나 인지 저하가 일어나진 않아요. 반복해서 오래 쓰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고, 그건 장기 추적 연구로 밝혀야 해요.” 그러니 지금 데이터로 “AI가 뇌를 망친다”고 단정하는 건 성급해요. 다만, 서로 다른 팀이 서로 다른 과제로 비슷한 방향의 신호를 반복해서 잡아내고 있다는 점은 그냥 넘기기 어려워요.
그래서, 무엇이 진짜 다른가
과거의 도구와 AI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 있어요. 그린의 표현을 빌리면, AI는 ‘우리 대신 아이디어를 내는’ 첫 기술이에요. 문자는 기억을 대신했고, 계산기는 연산을 대신했고, 구글은 검색을 대신했어요. 전부 ‘생각의 재료’를 다루는 일이었죠. 하지만 AI는 생각 그 자체, 그러니까 무엇을 떠올리고 어떻게 연결할지를 대신해요.
문제는 아직 그 능력을 길러본 적 없는 사람들이에요. 스위스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게를리히는 이렇게 경고해요. “젊은 세대가 비판적 사고를 처음부터 배우지 못할 위험이 커요. AI가 대신 생각해주는 편리함 때문에, 그 능력을 아예 발달시키지 못할 수 있거든요.” 이미 익힌 사람도 안심할 순 없어요. 1971년 조종사 연구를 보면, 한동안 비행하지 않아도 손과 눈의 감각은 잘 유지됐지만, 절차를 기억하고 비행기의 위치를 머릿속에 그리는 ‘인지적’ 기술은 빠르게 무뎌졌어요. 근육은 남아도, 생각의 근육은 쓰지 않으면 빠져요.
구글의 전례도 곱씹어볼 만해요. 우리는 구글 덕분에 더 똑똑해지거나 자유로워졌을까요. 꼭 그렇진 않았어요. 일과 삶의 경계는 흐려졌고, 주의력은 짧아졌어요. 20세기 내내 10년마다 약 3점씩 오르던 IQ 점수는 2006년 이후 여러 항목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하락이 가장 가팔랐던 집단이 18~22세, 바로 가장 디지털 네이티브에 가까운 세대였어요.
한 가지 희망적인 단서도 있어요. 짧아진 주의력을 두고 연구자들은 그게 뇌 구조가 바뀐 결과라기보다 ‘습관’의 문제에 가깝다고 봐요. 우리가 스스로 깔아둔 방해 요소를 걷어내면, 다시 길게 집중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능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안 쓰고 있을 뿐이라면, 되돌릴 여지도 그만큼 남아 있는 거죠.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주제에서 양쪽 모두를 조금씩 의심해요.
데이터를 다뤄본 사람으로서, “AI가 뇌를 망친다”는 헤드라인은 아직 근거가 얇다고 봐요. 표본 수십 명짜리 실험, 10분짜리 관찰, 동료 심사 전 논문으로 인류의 미래를 단정할 순 없어요. 공포는 늘 데이터보다 빨리 팔리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계산기 때도 괜찮았으니 이번에도 괜찮다”는 낙관도 게을러 보여요. 서로 다른 연구가 자꾸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그건 우연이라기보다 패턴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제가 AI 도구를 직접 만들면서 반복해서 확인한 게 하나 있어요. 지금의 AI는 ‘즉각적이고 완결된 답’을 주도록 설계돼 있어요. 그게 제품의 미덕이거든요. 사용자가 헤매지 않고, 막히지 않고, 곧바로 결과를 얻는 것. 그런데 배움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어요. 헤매고, 막히고, 틀리는 과정에서 생각의 근육이 붙어요. 리우 팀의 말처럼 AI는 ‘안 돼’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건 AI의 결함이 아니라 설계 선택이에요. 그리고 설계는 바꿀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에요. “무엇을 내 손에 남기고, 무엇을 넘길지”를 의식적으로 고르는 거예요. 코스미나는 자기가 만든 AI는 연구에만 쓰고, 개인적인 삶에서는 “당당하게” 언어 모델을 쓰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린은 “빈 페이지를 존중하라”고 했고요. 저도 초안을 잡는 그 순간만큼은 AI를 잠시 꺼두려 해요. 결과물의 속도는 조금 잃더라도, 생각하는 감각만큼은 제 것으로 남겨두고 싶거든요.
마치며
정리하면 이래요. 첫째, “새 기술이 뇌를 망친다”는 공포는 늘 있었고 대체로 빗나갔어요. 둘째, 그런데 AI는 검색과 계산을 넘어 ‘생각’을 대신하는 첫 도구라, 초기 연구들이 지속성과 창의성, 비판적 사고에서 작은 경고음을 내고 있어요. 셋째, 아직 단정하긴 이르지만, 그래서 더더욱 무엇을 내 능력으로 지킬지 지금 정해둘 필요가 있어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막히는 문제 하나를 AI 없이 끝까지 붙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포기하고 싶어지는 바로 그 지점이, 사실 생각의 근육이 붙는 자리거든요.
💬 구독자님은 이미 AI에 ‘넘겨버린’ 능력이 있나요? 저는 길 찾기 감각을 GPS에 완전히 내준 것 같아요. 반대로 “이건 절대 AI에 안 넘긴다” 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 이유까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다음 호 소재로 삼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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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Nataliya Kosmyna 외, “Your Brain on ChatGPT: Accumulation of Cognitive Debt when Using an AI Assistant for Essay Writing Task”, MIT Media Lab, 2025.
- Hamsa Bastani 외, “Generative AI without guardrails can harm learning: Evidence from high school mathematics”, PNAS, 2025.
- Grace Liu 외, “AI Assistance Reduces Persistence and Hurts Independent Performance”, 2026 (프리프린트).
- Louisa Dahmani & Véronique Bohbot, “Habitual use of GPS negatively impacts spatial memory during self-guided navigation”, Scientific Reports, 2020.
- Adam Green 외, “The Link Between Diverse Words and Original Ideas Is Weakening in the AI-Era College Admissions”, PsyArXiv 프리프린트(조지타운대), 2026.
- Michael Gerlich, “AI Tools in Society: Impacts on Cognitive Offloading and the Future of Critical Thinking”, Societies, 2025.
배경 지식
- Betsy Sparrow, Jenny Liu & Daniel Wegner, “Google Effects on Memory: Cognitive Consequences of Having Information at Our Fingertips”, Science, 2011. : ‘구글 효과’의 원전이에요.
- Nicholas Carr, “Is Google Making Us Stupid?”, The Atlantic, 2008. : 이번 논쟁의 데자뷔 같은 글이에요. 17년 전 글인데 지금 읽어도 똑같아요.
📝 용어 설명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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