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사업계획서, 지금 봐도 유효할까요?
AI가 바꾼 건 기술이 아니라 '창업의 공식' 그 자체예요

들어가며
구독자님, 6년 전에 투자한 스타트업 창업자를 만났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창업자는 자율주행이라는 복잡한 기술 문제를 풀기 위해 5년간 코드를 쌓았어요. 고유한 비즈니스 모델도 있었고, 기술적 해자1도 단단했어요. 그런데 투자 라운드를 준비하면서 투자자 덱을 펼쳐보니,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최근에 저도 GP를 운용하시는 분들이나 엔젤 투자를 하는 분들 몇분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는데 완전 투자 검토를 다시 하시거나 스타트업 투자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아예 다음 라운드에서 가망 없는 곳들은 회수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AI 관련 기업에 재투자하겠다고 이미 LP들 동의까지 받아 놓은 펀드들도 존재한다는 말도 들었구요. 이건 제가 보고 들은 이야기 뿐 아니라 최근 린 스타트업2의 창시자 스티브 블랭크가 최근 블로그에서 공유한 실제 이야기예도 있어요. 그가 내린 결론은 냉정해요. “2년 이상 된 스타트업 대부분은 이미 사업 계획이 무효화됐다.” 오늘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 VC의 돈이 AI로 몰리고 있어요
먼저 숫자부터 볼게요. OECD가 올해 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벤처 캐피탈 투자의 61%인 2,587억 달러(약 370조 원)가 AI 기업에 집중됐어요. 2022년의 30%에서 불과 3년 만에 2배로 뛴 거예요. 더 놀라운 건 그 안에서의 쏠림이에요. 메가딜(1억 달러 이상 투자)이 전체 AI 투자 금액의 73%를 차지했고, 10억 달러 이상 딜만 모아도 전체의 절반에 가까워요. OpenAI의 400억 달러, Anthropic의 130억 달러 라운드 같은 거대 투자가 전체 수치를 끌어올리고 있는 거예요.
한국도 다르지 않아요. 더브이씨(The VC) 데이터 기준으로 국내 AI 투자 금액 비중은 2022년 9.4%에서 2025년 23.6%로 확대됐어요. 그리고 2026년 1분기에는 45%를 넘겼어요. 혁신의숲 데이터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요. 혁신의숲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투자액 중 AI 분야 비중이 2024년 27.9%에서 2025년 8월 기준 31.7%로 상승했고, 투자 건수 기준으로도 AI/딥테크/블록체인이 거의 매월 1~2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2024년 연간 투자 총액은 1,416건에 약 6조 7,564억 원이었는데, 전체 건수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AI 쪽으로의 쏠림만 강해지는 구조예요. 투자 건수는 줄고 금액은 늘어난다는 건, 소수의 AI 기업에 자금이 몰리고 나머지는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 숫자들이 말해주는 건 명확해요. AI와 관련 없는 스타트업은 점점 줄어드는 파이를 두고 경쟁해야 해요. 블랭크가 만난 ‘Chris’의 자율주행 드론 스타트업이 정확히 이 상황이에요. 5년 동안 고개를 숙이고 기술을 만드는 사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율 드론 시장을 폭발시켰어요. PitchBook 데이터에 따르면 방위 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VC 투자는 2025년에 491억 달러로 전년(272억 달러) 대비 거의 두 배가 됐어요. 2025년에만 10개의 신규 유니콘이 이 분야에서 탄생했고, Anduril은 기업 가치 305억 달러로 25억 달러를 추가 조달했어요.
Chris의 제품은 분쟁 지역 의료 후송이나 보급 수송에 완벽하게 맞는 솔루션이었지만, 정작 그는 이 기회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어요. 블랭크의 말처럼, Chris가 만든 항공 플랫폼 통합 기술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어요. 하지만 그 기술을 둘러싼 사업 모델은 완전히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에요.
스타트업이 ‘고개를 숙이고 집중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가 끝나고 있어요. 지금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는 것이 생존 조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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