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제153호 ·

PC가 15년 걸린 일을 3년 만에

가격이 무너지는데 지출은 왜 폭증할까요? 금융권, 과학자, 기업인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PC가 15년 걸린 일을 3년 만에

들어가며

구독자님, 2002년 미국 신문사 주식 차트 하나로 시작해볼게요.

신문사들의 실적 전망치는 2007년까지 멀쩡했어요. 그런데 주가는 2002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거든요. 실적이 붕괴하기 5년 전에, 시장이 먼저 팔아버린 거예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어요.

001 news[차트 1: Newspaper Stocks Sold-Off 5 Years Before Earnings Collapsed]

지금 소프트웨어 주식에서 똑같은 이야기가 돌고 있어요. “실적은 아직 괜찮지만, AI가 결국 SaaS를 무너뜨릴 것이다. 신문사 때처럼 미리 팔아야 한다”는 논리예요. 실제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향후 12개월 잉여현금흐름 대비 멀티플1은 2014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왔어요.

그런데 정말 같은 이야기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붕괴가 아니라 정반대예요. 지능의 가격이 PC보다 다섯 배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데, 그럴수록 사람들은 AI를 더 많이, 더 여러 곳에 쓰고 있거든요. 오늘은 이 역설의 구조를 따라가 볼게요.


시장은 왜 미리 파는가

먼저 소프트웨어 셀오프의 실제 모습부터 볼게요. 흔히 “소프트웨어 대학살”이라고 표현하지만, 데이터를 열어보면 무차별 투매가 아니에요. 흔히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경제 유튜버 및 핀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제대로 분석되지 않았어요. 다들 그냥 하락한 주가에 현상을 끼워 맞춰 마구 소음을 이르키고 있을 뿐이에요. 아래 그래프를 보죠.

Software's Selective Sell Off[차트 2: Software’s Selective Sell-Off, $IGV 분위별 수익률]

미국 소프트웨어 ETF인 IGV2 구성 종목을 수익률 분위로 나눠보면, 연초까지는 상위권과 하위권이 비슷하게 움직였어요. 그런데 2026년 1월을 기점으로 갈라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상위 사분위와 하위 사분위 사이에 약 50%포인트의 격차가 벌어졌어요. 상위 사분위는 오히려 플러스 수익률이고요.

흥미로운 건 이 격차가 매출 성장률과 거의 상관이 없다는 점이에요. 성장률이 높은 대형 종목이 최하위 분위에 몰려 있기도 해요. 시장이 보는 건 지금의 성장이 아니라 “AI 시대에도 이 회사의 해자가 유지되는가”예요. 사이버보안과 옵저버빌리티, 버티컬 SaaS는 살아남는 쪽으로, 수평적 플랫폼과 범용 도구는 위험한 쪽으로 분류되고 있어요.

즉, 시장의 메시지는 “소프트웨어는 끝났다”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는 사실만으로는 더 이상 해자가 아니다”**에 가까워요. 그리고 이 판정의 근거가 되는 변수가 바로 다음 섹션의 주인공, 지능의 가격이에요.

매출 85% 뛴 회사가 ‘구독은 죽었다’고 했다 · 제148호 · 오즈의 지식토킹소프트웨어가 일을 대신 끝내주는 시대, 가격표가 바뀌고 있어요oztalking.com

지능의 가격, PC보다 다섯 배 빠른 추락

The Price of Intelligence Is Falling Quickly[차트 3: The Price of Intelligence Is Falling Quickly]

골드만삭스가 1980년대 PC 보급 사이클과 2022년 이후 AI 사이클의 가격 하락 속도를 겹쳐 그렸는데요. PC 가격지수가 특정 수준까지 떨어지는 데 15년 넘게 걸린 반면, LLM 가격지수는 같은 폭의 하락을 약 3년 만에 달성했어요. 성능까지 감안한 “가격 대비 지능” 지수로 보면 하락 속도는 더 가팔라요. 토큰3 100만 개, 그러니까 A4 약 750장 분량의 텍스트를 처리하는 비용이 3년 사이 수십분의 일로 줄어든 셈이에요.

여기서 두 가지 해석이 갈려요. 비관론은 이렇게 말해요. “프론티어 모델은 점점 비싸게 만드는데, 고객은 굳이 최신 모델을 쓸 이유가 없어진다. 더 싼 구형 모델이나 오픈웨이트 모델4로 내려가면, 프론티어 개발은 지속 불가능하다.”

낙관론은 다르게 봐요. 가격이 떨어질수록 쓸 수 있는 용도가 늘어나고, 결국 총수요가 가격 하락분을 압도한다는 거예요. 19세기 경제학자 제번스가 석탄에서 발견한 그 패턴, Jevons 역설5이에요.

혹시 기시감이 드셨다면 맞아요. 지난 2호에서 이 역설을 한 번 다뤘어요. 그때는 개인의 책상 위 이야기였어요. AI로 작업 하나하나는 빨라졌는데 업무 총량이 늘어나면서 퇴근이 빨라지지 않는 구조, UC 버클리 연구진이 ‘업무 강화’라고 부른 현상이요. 오늘은 같은 역설을 시장 전체의 렌즈로 넓혀서 볼 거예요. 개인의 프롬프트에서 벌어지던 일이, 국가 단위의 지출 데이터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죠.

어느 쪽이 맞는지는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어요.

싸질수록 더 쓴다

미국 가구의 AI 유료 구독 침투율과 월평균 지출[차트 4: 미국 가구의 AI 유료 구독 침투율과 월평균 지출]

PNC 은행의 결제 데이터를 보면, AI 유료 구독을 하는 미국 가구 비중은 2026년 4월 기준 2.2%예요. 절대 수치로는 아직 작지만, 3년 내내 한 번의 꺾임도 없이 올라가는 곡선이에요. 더 눈에 띄는 건 구독 가구의 월평균 지출인데, 올해 초부터 약 25% 늘어서 31달러까지 올라왔어요. 단위 가격은 폭락하는데 가구당 지출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거예요.

기업 쪽 데이터도 같은 방향이에요. 모델 중개 플랫폼 OpenRouter의 이용 데이터를 YipitData가 분석했는데, 개방형 저가 모델의 토큰 점유율이 연초 대비 세 배 늘어 약 60%까지 커졌어요. 그런데 같은 기간 프론티어 모델의 토큰 사용량도 함께 늘었고, 사용자당 토큰 소비는 사용자당 지출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했어요. 싼 모델이 비싼 모델을 잡아먹은 게 아니라, 전체 판이 커지면서 총지출이 위로 밀려 올라간 거예요.

참고할 만한 과거 수치가 하나 있어요. PC가 상용화되고 수십 년이 지난 1997년에도 미국 35~54세 성인의 PC 보유율은 45% 수준이었어요. 지금은 가구 기준 90%, 스마트폰까지 포함하면 97%에 가깝고요. 기술의 대중 보급은 효용과 가격, 두 변수를 따라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가요. 2.2%라는 침투율은 천장이 아니라 출발선에 가까워 보여요.

다만 여기서 정직하게 짚고 갈 게 하나 있어요. 차트 3의 품질조정 가격지수를 만든 연구팀이 같은 논문에서 내린 결론은 오히려 신중한 쪽이거든요. Demirer 연구팀은 단기 가격탄력성6을 측정했더니 1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고, 따라서 “Jevons 역설이 작동할 여지는 제한적”이라고 썼어요. 쉽게 말해 가격이 반토막 나도 사용량은 딱 두 배 남짓 늘어서, 총지출은 거의 제자리라는 뜻이에요.

그럼 총지출이 늘어나는 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여기가 이 논쟁의 진짜 쟁점이라고 봐요. 기존 사용자가 더 많이 쓰는 것(집약적 마진)과 새로운 사용자가 계속 들어오는 것(확장적 마진)은 다른 이야기예요. 연구팀이 측정한 건 앞쪽이고, 가구 침투율 2.2%가 보여주는 건 뒤쪽이에요. 지금까지의 지출 증가는 Jevons 효과보다 신규 유입에 더 크게 기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오스왈드의 시선

lines저는 이 네 개의 차트가 사실 하나의 이야기라고 봐요. 시장이 소프트웨어를 선별적으로 파는 것과 가계가 AI 지출을 늘리는 것은 같은 사건의 양면이에요. 지능의 가격이 무너지면서, 가치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에서 “싸진 지능 위에서 무엇을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는 거예요.

GTM 전략을 수립해온 경험에서 보면, 신기술의 단가가 급락하는 국면에서 기업들이 가장 자주 하는 실수는 가격 하락을 시장 축소로 읽는 거예요. 실제로는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이전에는 채산이 안 맞던 용도가 새로 열리면서, 수요의 표면적 자체가 넓어지거든요. 제가 SaaS 제품의 시장 진입을 도우면서 봤던 패턴도 같았어요. 가격 장벽이 낮아진 뒤에 들어온 고객군이 결국 매출의 대부분을 만들었어요.

다만 신문사 차트가 주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해요. 시장이 5년 먼저 파는 게 맞을 때도 있어요. 차이는 이거예요. 신문사의 수요는 대체재로 빠져나갔지만, 소프트웨어의 수요는 지금 확장되고 있어요. 파괴되는 건 수요가 아니라 “누가 그 수요를 가져가느냐”의 순위예요. 그래서 저는 이 국면을 산업의 종말이 아니라 재배분으로 읽어요.


마치며

오늘 이야기를 세 줄로 정리하면 이래요. 지능의 가격은 PC 사이클보다 다섯 배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가격 하락은 수요를 죽이는 게 아니라 가구 지출과 토큰 소비를 함께 밀어 올리고 있어요. 시장의 소프트웨어 셀오프는 이 새 판에서 누가 해자를 유지할지에 대한 선별 작업이에요.

그러니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AI가 소프트웨어를 죽이는가”가 아니라 “싸진 지능 위에서 내 제품과 조직은 어떤 독점적 위치를 잡을 것인가”예요. 이건 피터 틸의 Zero to One에서도, 지금도 여전히 먹히는 전략이에요. 최근 Y Combinator 배치에서 same.new라는 서비스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URL을 입력하면 그대로 해당 웹사이트의 디자인 및 대략적인 기능을 복제해 만들어주는 서비스에요. 저작권과 약간의 윤리는 저버린 아이디인데 이게 평소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등을 외치던 Y Combinator에 선발되었다는 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same.newsame.new

구독자님이 쓰시는 AI 구독료는 1년 전과 비교해 늘었나요, 줄었나요? 무엇에 돈을 더 쓰게 됐는지, 반대로 끊은 건 무엇인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다음 호 소재로 반영해볼게요.


💬 AI 지출의 변화, 댓글로 들려주세요 · 📨 이 분석이 유용했다면 동료에게 공유해 주세요

(웹 버전에만) 📬 이런 분석을 매주 받아보고 싶으시다면 구독하기 저는 매주 기술·경제·인문을 교차해서 분석하는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어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Moses Sternstein, “Charts of the Week: Software’s Selective Sell-Off”, a16z New Media (Random Walk), 2026. 7. 17. ··· 오늘 뉴스레터의 뼈대가 된 원문이에요. 차트 4개가 모두 여기서 나왔어요.
  • Goldman Sachs Global Investment Research, “Costs of New Technology for End-Use Consumers”, 2026. 7. 10. ··· PC와 LLM의 가격 하락 사이클을 직접 비교한 핵심 근거예요. 유료 리서치라 공개 링크는 없고, 위 원문 기사에서 차트를 보실 수 있어요.
  • PNC Research, Internal Data, 2026. 7. 13. ··· 미국 가구의 AI 유료 구독 침투율(2.2%)과 월평균 지출(31달러) 데이터의 출처예요. 은행 내부 결제 데이터라 원자료는 비공개예요.
  • YipitData의 OpenRouter 토큰 사용량 분석, 2026. ··· 오픈웨이트 모델 점유율 확대와 총소비 증가를 함께 보여주는 데이터예요. OpenRouter 표본은 저가 모델 사용자 쪽으로 치우쳐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반대편 근거 (꼭 같이 보세요)

  • Mert Demirer, Andrey Fradkin, Nadav Tadelis, Sida Peng, “The Emerging Market for Intelligence: Pricing, Supply, and Demand for LLMs”, NBER Working Paper 34608, 2025. 12. ··· 차트 3의 품질조정 가격지수를 만든 바로 그 연구팀이에요. 그런데 이 논문의 다섯 번째 발견은 단기 가격탄력성이 1을 겨우 넘는 수준이라 “Jevons 역설의 여지는 제한적”이라는 거예요. 오늘 이야기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결론이니, 본문 3장과 함께 읽어보시길 권해요. PDF 전문도 공개돼 있어요.

배경 지식

함께 읽으면 좋은 지난 호

안광섭 프로필 일러스트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각주

  1. 멀티플 (Multiple): 기업 가치를 이익이나 현금흐름의 몇 배로 평가하는지를 나타내는 배수예요. 낮아졌다는 건 같은 돈을 벌어도 시장이 예전보다 싸게 쳐준다는 뜻이에요.

  2. IGV: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묶은 대표 ETF예요(iShares Expanded Tech-Software Sector ETF). 소프트웨어 업종의 체온계 역할을 해요.

  3. 토큰 (Token): AI 모델이 텍스트를 처리하는 최소 단위예요. 대략 한글 1~2글자, 영어 단어 하나의 일부에 해당하고, AI 사용료는 보통 토큰 수로 매겨져요.

  4. 오픈웨이트 모델 (Open-weight Model): 모델의 학습 결과물(가중치)을 공개해 누구나 내려받아 쓸 수 있는 AI 모델이에요. 상용 API보다 훨씬 싸게 운영할 수 있어요.

  5. Jevons 역설: 자원을 쓰는 효율이 좋아지면 소비가 줄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격이 내려가 사용처가 늘면서 총소비가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이에요. 19세기 영국의 석탄에서 처음 관찰됐어요.

  6. 가격탄력성 (Price Elasticity): 가격이 1% 내려갈 때 수요량이 몇 % 늘어나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예요. 이 값이 1보다 충분히 커야 총지출이 늘어나요. 1 근처면 가격이 내려간 만큼 사용량이 늘어서, 결국 쓰는 돈은 거의 그대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