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제57호

AI 시대의 박사과정생, 축복인가 저주인가

박사과정이 길러야 할 능력을, AI가 대신 해주고 있다면 — 그 학위는 무엇을 증명하는 걸까요?

AI 시대의 박사과정생, 축복인가 저주인가

들어가며

구독자님, 지난주 학계에서 꽤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세계 최대 규모의 머신러닝 학회 ICML1​ 2026이 497편의 논문을 일괄 거부(desk reject)했어요. 이유가 특이해요. 논문 자체의 품질 문제가 아니라, 해당 논문의 저자가 다른 사람의 논문을 심사(peer review)할 때 AI를 몰래 쓴 것이 적발됐기 때문이에요.

“AI를 쓰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동의해 놓고, 쓴 거예요.

이 사건이 흥미로운 건, 적발 방법 때문이에요. ICML 조직위는 심사용 논문 PDF에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워터마크’를 심어뒀어요. 이 워터마크에는 AI에게만 읽히는 지시가 숨겨져 있었고, AI가 그 지시를 따라 리뷰에 특정 문구를 삽입하면 — 적발되는 구조였어요. 17만 개의 문구 사전에서 논문마다 두 개씩 무작위로 뽑았으니, 우연히 겹칠 확률은 100억분의 1 이하예요. 이 방식은 사실 예전에 제가 만든 방식 입니다. 받아드려져 기쁘기도 하면서도 씁쓸한 순간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런데 저는 이 사건에서 적발 기법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어요. AI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들조차 자신이 동의한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AI에 의존하는 현실 — 이건 개인의 윤리 문제일까요, 아니면 더 구조적인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이 질문을 박사과정생부터 시니어 연구자까지, 연구 생태계 전체의 맥락에서 풀어볼게요.

ICML 연구자는 왜 규칙을 어겼는가

먼저 ICML 사건의 구조를 좀 더 뜯어볼게요. ICML 2026은 AI 활용에 대해 두 가지 정책을 운영했어요. Policy A(보수적)는 심사 과정에서 AI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고, Policy B(허용적)는 논문 이해와 리뷰 다듬기에 AI를 쓸 수 있게 허용하는 거예요. 심사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정책을 직접 선택했어요. 즉, Policy A를 선택한 사람은 스스로 “AI를 안 쓰겠다”고 약속한 거예요.

그런데 결과는요. Policy A를 선택한 심사자 중 506명이 AI를 사용한 것으로 적발됐고, 이들이 작성한 리뷰 795건(전체 리뷰의 약 1%)이 삭제됐어요. 이 중 51명은 자신이 쓴 리뷰의 절반 이상이 AI로 작성된 것으로 확인돼 심사자 자격 자체가 박탈됐어요. ICML의 상호 심사(reciprocal review)2​ 정책에 따라, 규칙을 어긴 심사자의 논문 497편(전체 제출의 약 2%)이 거부됐고요.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어요. ICML 조직위가 명시한 것처럼, 이 적발 방법은 가장 노골적인 위반만 잡아내요. 심사 대상 논문의 PDF를 AI에 넣고 결과물을 복사-붙여넣기하는 수준의 위반이요. 워터마크의 존재는 심사 기간 대부분 동안 공개되어 있었고, 조금만 신경 쓰면 피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1%가 적발됐다는 건, 실제 AI 활용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제 이전 블로그에서도 언급했듯이 저 PDF 워크마크는 파이썬 스크립트만 한 번 거쳐도 해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ICML이라는 권위적이고 국제적 학술대회에 이렇게 제출하다니?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학술 출판사 Frontiers가 2025년에 111개국 약 1,600명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3%가 동료심사에 AI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어요. 초기경력 연구자(경력 5년 이하)로 좁히면 87%까지 올라가요. 하지만 많은 학술지와 학회의 정책은 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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