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테크 제78호 ·

ChatGPT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법원이 전부 되돌렸다

AI에게 판단을 위임한 CEO가 받은 청구서는 3,250억 원이 아니라 신뢰였다. 구독자님, 최근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어요. 한 글로벌 기업의 CEO가 자사 법무팀의 경고를 무시하고, ChatGPT에게 물었어요. "계약상 지급해야 할

ChatGPT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법원이 전부 되돌렸다

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최근 무척 흥미로운 판결문이 공개되었어요. 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회사의 대표가 한 인디 게임 스튜디오 후속작이 성공할 것 같자 추가적으로 낼 금액에 대한 고민이 생겨 다음과 같이 ChatGPT에게 물었어요. ‘계약상 지급해야 할 2.5억 달러를 안 낼 방법이 없을까?’ ChatGPT는 처음에 “어렵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CEO가 계속 물었더니, ChatGPT는 꽤 그럴듯한 전략을 내놨어요.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게이머 커뮤니티 여론을 선제적으로 장악하고, 스팀 퍼블리싱 권한을 확보하고, 법적 방어 자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라고요.

CEO는 그 전략을 거의 그대로 실행했어요. 결과는? 미국 델라웨어 법원이 모든 조치를 원상복구하라고 명령했어요. 해고된 디렉터를 복직시키고, 게임 출시 권한을 돌려주고, 성과급 지급 기한까지 258일 연장해줬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배틀그라운드(PUBG)로 유명한 크래프톤이에요. 오늘은 이 사건이 단순한 게임 업계 분쟁이 아니라, AI 시대 의사결정의 구조적 함정을 보여주는 사례인 이유를 이야기해 볼게요.

🎮 5억 달러짜리 인수, 그리고 ‘나쁜 딜’이라는 후회

2021년, 크래프톤은 해저 생존 게임 ‘서브노티카(Subnautica)‘로 유명한 미국 인디 스튜디오 Unknown Worlds Entertainment를 5억 달러(약 6,500억 원)에 인수했어요.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었는데요. 후속작 서브노티카 2가 일정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2.5억 달러(약 3,250억 원)를 추가로 지급하는 얼아웃(earnout)1​ 계약이었어요.

이 계약의 구조가 독특했어요. 매출이 6,980만 달러 기준선을 넘으면, 추가 1달러당 3.12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고레버리지 구조였거든요. 상한은 2.5억 달러. 그리고 공동 창업자 찰리 클리블랜드, 맥스 맥과이어, CEO 테드 길 세 사람은 ‘핵심 임직원(Key Employee)‘으로 지정되어, 얼아웃 기간 동안 스튜디오의 운영 통제권을 보장받았어요. 해고 사유도 중범죄 유죄, 고의적 사기, 영업비밀 유출 같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로만 한정되어 있었고요.

문제는 2025년 봄에 터졌어요. 서브노티카 2의 얼리액세스 출시가 다가오면서, 크래프톤 내부 재무팀이 매출 예측을 돌렸는데요. 2025년 8월 얼리액세스 출시 후 4분기까지 167만 장 이상 판매될 것으로 예측했고, 기본 시나리오에서 얼아웃 지급액이 1.918억 달러, 최선의 경우 2.422억 달러로 나왔어요. 사실상 상한에 가까운 금액이었죠. 어떤 시나리오에서는 얼아웃 지급액이 크래프톤이 산정한 스튜디오의 기업가치를 초과하기도 했어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얼아웃 계약 자체는 2021년 인수 당시 양측이 합의한 조건이에요. 인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크래프톤이 자발적으로 제시한 구조였고요. 게임이 성공하면 추가로 지급한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게임이 잘 안 되면 안 내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매수자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였어요. 그런데 게임이 정말로 성공할 것 같아지자, 바로 그 리스크 헤지 장치가 부담으로 돌아온 거예요.

크래프톤 CEO 김창한은 내부 슬랙 메시지에서 이 딜을 ‘나쁜 딜(bad deal)‘이라 불렀고, 자신이 ‘이용당했다(taken advantage of)‘고 느꼈다고 법원 기록에 남아 있어요. 얼아웃을 지급하면 자신이 ‘호구(pushover)’ 취급을 받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고요. 기업개발 담당 박마리아는 “핵심 임직원을 해고하더라도 얼아웃은 지급해야 하며, 소송과 평판 리스크에 노출된다”고 경고했어요.

🤖 ‘Project X’: ChatGPT가 설계한 기업 인수 전략

경고를 받은 뒤 김창한 CEO(이하 CEO)가 택한 행동이 이 사건의 핵심이에요.

자사 법무팀이나 외부 로펌이 아니라, ChatGPT에게 물었거든요.

ChatGPT는 처음에 “얼아웃을 취소하기는 어렵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CEO가 계속 질문을 이어가자, ChatGPT는 점점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기 시작했어요.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 대화에서 나온 전략이 ‘Project X’라는 이름의 내부 태스크포스로 구체화되었어요. 핵심 내용은 이랬어요.

  • 선제적 여론 프레이밍: 분쟁을 ‘돈’ 문제가 아니라 ‘팬 신뢰’와 ‘게임 품질’ 문제로 포장할 것
  • 통제 포인트 확보: 스팀·콘솔 퍼블리싱 권한과 게임 코드 접근권을 잠글 것
  • 체계적 법적 방어 자료 준비: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기록하고 법적 대응을 선제 준비할 것
  • 협상 또는 장악(Takeover): 얼아웃 재협상이 안 되면 스튜디오를 직접 장악할 것 법원 기록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이후 한 달간 ChatGPT의 권고사항을 대부분 그대로 실행했어요. 2025년 6월 12일, 크래프톤은 Unknown Worlds와 서브노티카 공식 웹사이트에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게시했는데, 공동 창업자들이 복귀를 ‘고려 중’이라는 허위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스튜디오 리더십은 이 메시지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요. 법원 기록에 따르면, CEO는 ChatGPT에게 이 메시지의 초안 작성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결국 2025년 7월 1일, 크래프톤은 세 핵심 임직원 전원을 해고했어요. 이유는 “서브노티카 2의 성급한 출시를 강행하려 했다”는 것이었는데요. 법원은 이 해고 사유가 계약상 정당한 ‘정당 사유(for cause)‘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

⚖️ 법원이 주목한 진짜 쟁점: AI에게 판단을 위임한 것

⚠️ 저는 법률전문가가 아니며, 델라웨어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한 판결문에 근거한 사실관계를 정리한 것 입니다. 자세한 것은 판결문 원문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링크]

2026년 3월 16일, 델라웨어 형평법원(Court of Chancery)2​의 로리 윌 부총장 판사는 크래프톤의 완패를 선고했어요. 판결의 핵심은 명확했어요:

“크래프톤은 정당한 사유 없이 핵심 임직원을 해고하고, 부당하게 운영 통제권을 장악함으로써 지분매매계약(EPA)을 위반했다.”

법원이 내린 조치는 이랬어요:

  • 테드 길을 즉시 복직, 서브노티카 2 출시에 대한 완전한 운영 권한 회복
  • 스팀 플랫폼 접근권 즉시 복원
  • 2025년 7월 1일 이사회 결의 무효 선언
  • 얼아웃 측정 기간을 길이 부당 해고된 258일만큼 연장 (기존 2025년 12월 31일 → 2026년 9월 15일, 추가 연장 시 2027년 3월 15일까지 가능) 그런데 이 판결에서 법률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지점이 따로 있어요. 판결문 자체는 ChatGPT 활용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법적 선언을 담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판사가 크래프톤의 행위 전체를 ‘구실(pretext)‘로 판단하면서, ChatGPT와의 대화 내용을 핵심 증거로 상세히 인용한 점이 중요해요. Fortune지는 이 판결을 두고 “기업 경영진은 독립적인 인간의 판단을 행사해야 하며, 선의의 의사결정을 AI에게 위임(outsource)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해석했어요.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판결이 AI 활용과 수인의무(fiduciary duty)가 교차하는 최초의 분쟁 사례로 주목받고 있고요.

여기에 실무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어요. CEO가 ChatGPT와 나눈 대화는 법률 자문을 통한 것이 아니었어요. Sidley Austin의 법률 분석에 따르면, 이 때문에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3​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ChatGPT와의 대화 내용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되어 크래프톤의 의도를 드러내는 결정적 자료가 되었어요. 판결문에도 CEO가 재판에서 관련 ChatGPT 채팅 기록 일부를 삭제했다고 인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요.

한편, 크래프톤의 해고 사유 자체도 재판 과정에서 계속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서브노티카 2가 출시 준비가 안 됐다’고 주장했다가, 나중에는 창업자들이 ‘사실상 반은퇴 상태로 업무를 방치했다’로 논거를 바꿨어요. 판사는 이 일관성 없는 해명 자체가 실제 해고 동기가 얼아웃 회피였음을 방증한다고 봤어요.

🧠 ChatGPT는 ‘나쁜 조언’을 한 게 아니에요

이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ChatGPT가 나쁜 조언을 했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봐요. 사실 ChatGPT의 첫 번째 답변은 정확했어요. “얼아웃을 취소하기는 어렵다.” 이건 법적으로도,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맞는 판단이었거든요.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사용자가 “그래도 방법을 찾아달라”고 계속 밀어붙이자, ChatGPT는 점점 더 정교한 전략을 만들어냈어요. 선제적 여론 관리, 퍼블리싱 권한 확보, 법적 방어 체계 구축까지.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비합리적인 조언이 아니에요. 기업 전략 컨설팅에서 실제로 다루는 항목들이거든요.

진짜 문제는 맥락의 부재예요. ChatGPT는 이 조언이 계약 위반을 구성한다는 법적 맥락을 모르고 있었어요. 상대방의 반응과 법원의 판단이라는 ‘현실 세계의 되먹임(feedback loop)‘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략을 실행하면 안 된다”고 말할 유인이 전혀 없었어요.

이건 AI의 결함이 아니에요. 설계대로 작동한 거예요.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면, AI는 그 방향에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내요. 이걸 확증편향의 자동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CEO의 자문 패턴을 다시 살펴보면 이래요. 자사 법무팀이 “위험하다”고 경고했어요. 기업개발 담당이 “소송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CEO는 두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을 해줄 때까지 ChatGPT에게 계속 물었어요. 그리고 ChatGPT가 내놓은 전략을 ‘전문가 의견’처럼 취급하며 실행에 옮겼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이 사건을 보면서, 기업 임원 회의 장면이 떠올랐어요. 컨설팅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의뢰인은 “답을 이미 정해놓고 근거를 찾는” 의뢰인이에요. 이런 의뢰인에게 컨설턴트가 “그건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 의뢰인은 컨설턴트를 바꿔요. 자기가 원하는 답을 해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요. 사족을 붙이자면, 처음 컨설팅 사업을 하시거나, SI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무조건 수주 받기 위해 Yes를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당장 고객 같아 보이는 무언가를 얻을 순 있어도 결국 끝은 파멸이에요.

ChatGPT는 절대 바꿔지지 않는 컨설턴트예요.어떤 질문이든 답을 만들어내고, 사용자가 불만족하면 더 정교한 버전을 내놓아요. “이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라고 계속 대안을 제시하죠. 이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강점이에요. 하지만 법적·윤리적 경계가 중요한 상황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조언자가 되는 거예요.

이 판결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기술적 교훈이 아니에요. 의사결정의 책임은 위임할 수 없다는 원칙의 재확인이에요. AI가 아무리 정교한 전략을 만들어내더라도, 그 전략의 적법성과 윤리성을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에요. 그리고 그 판단을 AI에게 떠넘기는 순간, CEO는 자신의 판단력이 아니라 AI의 출력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거예요.

마치며

이 사건에서 기억해야 할 핵심은 세 가지예요. 이건 제가 컨설팅 할 때도 말을 하고 계약하기 전에도 몇 번이고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강의를 할 때도 언급을 하구요.

첫째, AI는 생각을 도와주는 도구이지, 의사결정을 대신하는 주체가 아니에요. 특히 법적·재무적 판단에서 AI의 출력물을 ‘전문가 의견’처럼 취급하는 건 위험해요.

둘째, AI와의 대화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밀어붙이면 AI는 결국 그 방향의 답을 만들어내요. 이건 AI가 ‘동의’한 게 아니라, 확증편향을 자동화한 거예요.

셋째, AI와 나눈 대화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어요. 변호사를 통하지 않은 AI 상담 내용은 소송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이 판결은 최초로 보여줬어요.

서브노티카 2는 2026년 5월 얼리액세스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복직한 테드 길이 출시 시점과 방향을 결정하게 되었고요. 게임이 성공하면 크래프톤은 결국 최대 3,250억 원짜리 수표에 서명해야 해요. 어쩌면 이 금액은 ‘나쁜 딜’의 대가가 아니라, 계약을 지켰을 때 치러야 하는 정당한 비용이었는지도 몰라요. 국내에서는 이 사건이 어디에서도 다뤄지지않고 있어서 한 번 다뤄봤어요.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는 김성회의 G식백과 같은 곳에서 당연히 다룰거라 생각했는데 딱히 안다루시길래… 판결문이 공식적으로 나온 김에 구독자 전용으로 다뤄봐요.

📎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배경 지식

필자 안광섭은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자 OBF(Oswarld Boutique Consulting Firm) 리드 컨설턴트이다. 대학에서 경영데이터 관리, 비즈니스 애널리틱스 등 통계 및 데이터 분석을 가르치는 한편, 현장에서는 GTM 전략과 인공지능 전략 컨설팅을 이끌며 기술과 비즈니스의 접점을 설계하고 있다. AI 대화 시스템의 기억 아키텍처(HEMA) 연구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으며, 매일 글로벌 AI 논문을 큐레이션하는 Daily Arxiv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 석사과정와 KMBA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생각을 맡기는 사람들: 호모 브레인리스》가 있다.

각주

  1. 얼아웃(Earnout): M&A에서 인수 대금의 일부를 즉시 지급하지 않고, 인수 후 피인수 기업이 일정 성과 목표를 달성하면 추가로 지급하는 조건부 대금이에요. 매수자와 매도자의 기업 가치 평가 차이를 메우는 장치로 쓰이는데, 이 사건에서 보듯 성과가 좋을수록 매수자에게는 부담이 되는 구조예요.

  2. 델라웨어 형평법원(Delaware Court of Chancery): 미국 기업법의 수도로 불리는 델라웨어주에 있는 특수 법원이에요. 대부분의 미국 대기업이 델라웨어에 법인을 두고 있어서, M&A·기업지배구조 관련 분쟁의 상당수가 이 법원에서 다뤄져요. 배심원 없이 판사가 단독으로 판결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3.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오간 대화는 소송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법적 보호 장치예요. 이 사건에서 ChatGPT와의 대화는 변호사를 통한 법률 자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특권의 보호를 받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