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테크제77호

ChatGPT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법원이 전부 되돌렸다

AI에게 판단을 위임한 CEO가 받은 청구서는 3,250억 원이 아니라 신뢰였다. 구독자님, 최근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어요. 한 글로벌 기업의 CEO가 자사 법무팀의 경고를 무시하고, ChatGPT에게 물었어요. "계약상 지급해야 할

ChatGPT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법원이 전부 되돌렸다

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최근 무척 흥미로운 판결문이 공개되었어요. 세계적으로 성공한 게임회사의 대표가 한 인디 게임 스튜디오 후속작이 성공할 것 같자 추가적으로 낼 금액에 대한 고민이 생겨 다음과 같이 ChatGPT에게 물었어요. ‘계약상 지급해야 할 2.5억 달러를 안 낼 방법이 없을까?’ ChatGPT는 처음에 “어렵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CEO가 계속 물었더니, ChatGPT는 꽤 그럴듯한 전략을 내놨어요.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게이머 커뮤니티 여론을 선제적으로 장악하고, 스팀 퍼블리싱 권한을 확보하고, 법적 방어 자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라고요.

CEO는 그 전략을 거의 그대로 실행했어요. 결과는? 미국 델라웨어 법원이 모든 조치를 원상복구하라고 명령했어요. 해고된 디렉터를 복직시키고, 게임 출시 권한을 돌려주고, 성과급 지급 기한까지 258일 연장해줬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배틀그라운드(PUBG)로 유명한 크래프톤이에요. 오늘은 이 사건이 단순한 게임 업계 분쟁이 아니라, AI 시대 의사결정의 구조적 함정을 보여주는 사례인 이유를 이야기해 볼게요.

🎮 5억 달러짜리 인수, 그리고 ‘나쁜 딜’이라는 후회

2021년, 크래프톤은 해저 생존 게임 ‘서브노티카(Subnautica)‘로 유명한 미국 인디 스튜디오 Unknown Worlds Entertainment를 5억 달러(약 6,500억 원)에 인수했어요.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었는데요. 후속작 서브노티카 2가 일정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최대 2.5억 달러(약 3,250억 원)를 추가로 지급하는 얼아웃(earnout)1​ 계약이었어요.

이 계약의 구조가 독특했어요. 매출이 6,980만 달러 기준선을 넘으면, 추가 1달러당 3.12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고레버리지 구조였거든요. 상한은 2.5억 달러. 그리고 공동 창업자 찰리 클리블랜드, 맥스 맥과이어, CEO 테드 길 세 사람은 ‘핵심 임직원(Key Employee)‘으로 지정되어, 얼아웃 기간 동안 스튜디오의 운영 통제권을 보장받았어요. 해고 사유도 중범죄 유죄, 고의적 사기, 영업비밀 유출 같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로만 한정되어 있었고요.

문제는 2025년 봄에 터졌어요. 서브노티카 2의 얼리액세스 출시가 다가오면서, 크래프톤 내부 재무팀이 매출 예측을 돌렸는데요. 2025년 8월 얼리액세스 출시 후 4분기까지 167만 장 이상 판매될 것으로 예측했고, 기본 시나리오에서 얼아웃 지급액이 1.918억 달러, 최선의 경우 2.422억 달러로 나왔어요. 사실상 상한에 가까운 금액이었죠. 어떤 시나리오에서는 얼아웃 지급액이 크래프톤이 산정한 스튜디오의 기업가치를 초과하기도 했어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얼아웃 계약 자체는 2021년 인수 당시 양측이 합의한 조건이에요. 인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크래프톤이 자발적으로 제시한 구조였고요. 게임이 성공하면 추가로 지급한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게임이 잘 안 되면 안 내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매수자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이는 장치였어요. 그런데 게임이 정말로 성공할 것 같아지자, 바로 그 리스크 헤지 장치가 부담으로 돌아온 거예요.

크래프톤 CEO 김창한은 내부 슬랙 메시지에서 이 딜을 ‘나쁜 딜(bad deal)‘이라 불렀고, 자신이 ‘이용당했다(taken advantage of)‘고 느꼈다고 법원 기록에 남아 있어요. 얼아웃을 지급하면 자신이 ‘호구(pushover)’ 취급을 받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고요. 기업개발 담당 박마리아는 “핵심 임직원을 해고하더라도 얼아웃은 지급해야 하며, 소송과 평판 리스크에 노출된다”고 경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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