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제83호

바다 위 톨게이트, 해상 통행료의 역사

바다는 원래 무료가 아니었어요. '자유로운 항해'는 수백 년간의 전쟁과 협상 끝에 만들어진 약속이에요

바다 위 톨게이트, 해상 통행료의 역사

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스왈드의 지식토킹입니다.

얼마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에 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결제 수단은 비트코인. 전 세계 해상 원유 운송의 약 20%가 지나는 이 좁은 물길에 톨게이트가 세워진 거예요.

국제 해양법 전문가들은 일제히 “불법”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협에서 통행료를 받는 건 현대 국제법이 명백히 금지하는 행위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묘한 점이 있어요. 이 “바다는 무료”라는 원칙, 생각보다 아주 최근에 만들어진 규칙이라는 거예요.

불과 170년 전까지만 해도, 해협을 지나는 모든 배는 통행료를 내는 게 당연했어요. 오늘은 그 역사를 따라가 보면서, 이란의 시도가 왜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닌지 이야기해 볼게요.

🏰 해협은 원래 ‘유료 도로’였어요

해협에서 통행료를 받는 관행의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오래됐어요. 비잔틴 제국 시절, 다르다넬스 해협1​을 지나는 상선은 화물의 종류에 따라 세금을 냈어요. 포도주 상인은 6폴리스2​와 포도주 2섹스타리우스3​를, 밀 상인은 모디우스4​당 3폴리스를 통과세로 바쳤죠. 1354년 오스만 제국이 갈리폴리를 점령한 이후에는 상황이 더 체계적으로 변했어요. 오스만은 흑해를 사실상 자신들의 내해로 간주하고, 외국 선박의 통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거나 높은 통과세를 부과했어요.

하지만 해상 통행료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북유럽에 있었어요. 1429년, 덴마크의 에리크 7세는 외레순 해협5​을 지나는 모든 외국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기 시작했어요. 이 해협은 북해에서 발트해로 들어가는 사실상 유일한 관문이었거든요.

규칙은 단순했어요. 헬싱외르(셰익스피어의 『햄릿』 배경인 엘시노어)에 정박한 뒤, 덴마크 왕실에 통행료를 내야 했어요. 거부하면? 해협 양쪽 성벽의 대포가 불을 뿜었어요. 1567년부터는 화물 가치의 1~2%를 세금으로 거두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여기에 기발한 장치가 하나 있었어요. 선장이 화물 가치를 신고하면, 덴마크 왕은 그 신고 가격에 화물 전체를 매입할 권리를 가졌어요. 속여서 낮게 신고하면 왕이 헐값에 화물을 사가 버리는 거죠.지금도 써먹어도 될만큼 기발한 방법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여하튼 ‘외레순 통행료(Sound Dues)‘는 무려 428년간 지속됐어요. 16~17세기에는 덴마크 국가 수입의 최대 3분의 2를 이 통행료가 차지했을 정도예요. 크론보르 성6​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거대한 세관이었던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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